보쌈김치

 

‘숭’이라 불렸던 배추
오늘은 김치의 재료가 되는 배추에 대해 알아보려고 해. 배추는 우리나라에 언제 들어왔을까? 배추는 고려 시대에 중국에서 전해졌어. 이때의 배추는 속이 차지 않고 상추처럼 잎이 벌어져 있었지. 우리가 알고 있는 속이 꽉 찬 배추는 조선 후기에 들어온 결구배추야.

 

역사서에 배추가 등장한 것은 고려 고종 때 만들어진 『향약구급방』이 처음이야. 『향약구급방』은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약재로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들을 모아 놓은 의학책이지. 『향약구급방』에서는 배추를 채소가 아닌 약초로 분류했고 배추는 ‘숭’이라 기록했어. ‘숭’은 겨울에 말라 죽지 않고 추위에도 소나무처럼 잘 견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지. 배추의 또 다른 이름은 ‘백채’인데 줄기가 하얀 채소라는 뜻이야. 

왕실 고급 음식이었던 보쌈김치
“엄마, 옛날 김치도 지금처럼 매웠어?”
엄마가 절인 배추 하나를 떼서 선이 입에 넣어 주며 말했다.
“아니, 옛날 사람들은 이렇게 소금에 절인 배추를 먹었어. 이름도 소금에 담근 채소라는 뜻의 침채로 불렸지.”
“김치를 할 때 배추를 소금에 절이는 이유가 있어?”
선이가 입을 오물거리며 물었다.
“겨울에도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한 배추를 먹어야 하는데 보관이 어려웠어. 그래서 배추를 말려 먹었는데, 말린 배추는 본래의 맛을 살릴 수 없을 뿐더러 영양소의 손실이 컸어. 이런저런 방법을 찾다가 소금으로 배추를 절이면 한겨울에도 배추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거지. 그리고 배추를 절이기 시작한 시기는 삼국 시대야. 이때를 김치의 기원으로 보고 있어.”
“할미가 한마디 보태야겠는걸.”
할머니가 앞치마를 두른 채 주방으로 오며 말했다. 
“절인 배추를 먹던 사람들은 배추의 쓴맛을 없애려 했어. 짤수록 쓴맛이 강했거든. 그래서 절인 배추에 갓이나 부추, 생강이나 파, 마늘 등을 넣었어.”
엄마는 골고루 섞은 김치소를 절인 배추 위에 올리며 말했다.
“요렇게 빨간 김치가 된 건 조선 후기에 고추가 들어오면서부터야. 고추가 들어온 이후 조선의 음식에 많은 변화가 생겼어. 매운맛을 내기 위해 사용했던 후추나 산초 대신 고추를 사용했거든. 말린 고추를 곱게 빻아 가루로 만들어 국이나 찌개, 김치에 넣었지.”
“김치에 고춧가루를 넣으면서 소금을 줄였어. 간을 맞추기 위해 해산물과 젓갈류를 추가하면서 감칠맛이 살아났지. 고춧가루의 매운맛과 향이 해산물의 비릿함을 제거해 주고 음식이 상하는 것을 늦춰 주어 겨울에도 맛있는 김치를 먹게 되었지.”
엄마 말에 이어 할머니가 설명했다.
“하나 더 줘. 엄마, 근데 말이야 보쌈은 언제부터 먹었어?”
선이의 재촉에 엄마가 보쌈을 만들며 말을 이었다.
“보쌈은 조선 시대 때 왕족들이 먹던 궁중 음식이었어. 보쌈김치는 김치 중에서도 가장 고급스러운 김치로 평민들은 보쌈김치를 먹을 수 없었지.”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걸 왕족들만 먹었다는 거야?”선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보쌈에 들어가는 재료가 귀했으니까. 그런데 1900년대 일본이 조선의 정치에 개입하면서 궁중 음식이 민가에 퍼졌어.”
“어떻게?”
“왕실 요리사였던 안순환은 세종로에 명월관이라는 고급 음식점을 차려 왕실을 찾는 손님이나 외국인들에게 궁궐 음식을 선보였어. 그리고 이때 보쌈김치도 상에 올랐어. 이후 경성을 찾는 부자들에게 보쌈김치는 꼭 먹어야 하는 음식으로 통했단다.”
“궁중에서 탈출하긴 했지만 여전히 부자들만 먹었다는 거네.”
“보쌈김치에 각종 해산물과 다양한 과일들이 들어갈 뿐 아니라 만들 때도 손이 많이 가기 때문이었어. 보쌈김치는 개성에서 발달했는데, 이유는 개성 지역에서 재배된 배추가 보쌈하기에 적당했기 때문이야. 개성 배추는 통이 크고 잎이 넓어 김칫소를 배춧잎으로 싸기에 안성맞춤이었거든. 보쌈김치가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은 1945년 이후부터야.”
끓는 냄비에서 나오는 고기 향이 집안을 가득 메웠다. 할머니가 냄비에서 고기를 꺼내 썰며 말했다.

 

“이전의 보쌈김치는 김칫소를 잎이 넓은 배추에 보자기처럼 싸서 만드느라 손이 많이 갔어. 점차 손이 많이 가지 않도록 지금처럼 수육과 함께 먹는 보쌈으로 바뀌었지.”
할머니가 얇게 썬 돼지고기와 절인 배추, 김칫소를 그릇에 담아 선이 앞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돼지고기 위에 김칫소를 얹어 선이 입에 넣어 주었다.
“맛나지?”
선이는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매콤한 김칫소와 부드러운 고기의 조합은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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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픔을 해결한 채소들 
길쭉한 몸에 노란 속살을 감추기 위해 보라색 옷을 입고 있는 나는 비타민과 수분, 단백질, 탄수화물이 풍부해 끼니나 간식으로 안성맞춤이야. 찌거나 구울 수 있고 생으로 먹거나 말려서도 먹을 수 있는 나는 먹을 것이 부족할 때 백성들의 허기진 배를 채운 채소 중 하나란다. 나는 누굴까? 고구마라고? 딩동댕! 정답이야. 
고구마는 마야, 아즈텍, 잉카 문명을 이루며 살던 사람들이 재배했는데 후추를 찾아 탐험을 떠났던 콜럼버스에 의해 유럽에 전파되었어. 이후 1732년 흉작으로 기근에 허덕이던 일본 사람들이 고구마를 재배해 먹기 시작했어.

 

그러던 1763년 10월, 조엄이 일본 쓰시마섬에 사절단으로 가게 됐어. 조엄은 사절단을 맞이한 관리인으로부터 고구마로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었다는 말과 거친 땅에서도 수확이 좋다는 말을 듣게 됐어. 조엄은 고구마를 조선에 보냈어. 고구마의 특징과 농사짓는 방법을 적은 편지도 동봉했지. 조엄의 편지를 받은 동래(부산)의 관리는 쓰시마섬과 기후가 비슷한 절영도에 고구마를 심었어. 그리고 재배에 성공해 많은 고구마를 수확했지. 이후 고구마는 백성들의 굶주림을 해결하는 중요한 먹거리가 되었어.
고구마와 함께 인류의 먹거리를 책임진 구원 투수가 감자와 옥수수야. 감자는 7000년경 잉카인의 식량이었는데, 신대륙 발견으로 스페인에 의해 유럽으로 퍼졌어. 사람들의 굶주린 배를 해결한 식물이었던 고구마, 감자, 옥수수는 미래를 책임질 새로운 식량 자원으로 떠오르고 있어. 

/자료 제공= ‘역사로 보는 음식의 세계’(이은정 글ㆍ강영지 그림ㆍ크레용하우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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