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경 생활과 함께했던 돼지
돼지는 인류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어. 후기 구석기 시대의 유적지인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에는 야생 동물의 뼈와 암벽화가 보존되어 있어. 야생 돼지가 가축화된 것은 인간의 정착 생활과 관련이 있어. 농사를 짓기 위해 한곳에서 살기 시작한 사람들은 음식을 저장했으며 음식을 만들고 남은 찌꺼기들은 움막 주위와 밭에 뿌렸어.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던 돼지는 움막 주변의 음식 찌꺼기를 자주 찾았어.

 

사람들이 움막 주위를 서성이는 돼지를 잡아 우리에 가두면서 가축으로 기르게 된 거지. 돼지는 기르기 편한 동물이었어. 잡식성이라 먹이 주기가 편했고 어떠한 환경이든 잘 자랐어. 한 번에 십여 마리 가량의 새끼를 낳을 만큼 번식력도 좋았지. 돼지를 부족의 명칭으로 사용하기도 했어. 부여는‘마가’ㆍ‘우가’ㆍ‘구가’ㆍ‘저가’라는 부족이 모여 나라를 이루었는데, 이때 돼지의 이름을 붙여 ‘저가’라고 했지. 오늘 선이가 준비한 음식 이야기는 순대라고 하는데 어떤 사연이 담겨 있는지 잘 들어 보자.


피난민들의 슬픔이 녹아 있는 아바이 순대
포장마차 아저씨가 순대를 엄마와 선이 앞에 놓았다. 이번 순대는 지난번과 달리 굵고 붉은 빛이 덜했다. 
“이거 아바이 순대 같은데….”
“앗, 아바이 순대를 아시는구나. 혹시 고향이 속초?”
“속초 아니고요. 우리 엄마는 요리 연…….”
“어머님 친구분 고향이 속초라 몇 번 다녀온 적이 있어요.”
엄마가 선이의 말을 끊을 때는 조용히 빨리 먹자는 신호였다.
“근데 왜 아바이야?”
선이가 궁금해하며 물었다.
“북한에서는 아버지를 ‘아바이’라고 하는데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먹었던 순대이기 때문에 아바이 순대라고 하는 거야.”
“그럼 이 순대가 북한 음식이에요?”
“함경도가 북한에 있으니 북한 음식이 맞지.”
아저씨 말에 선이의 눈이 커졌다.
“북한에서 온 음식이 여러 가지네. 근데요 아저씨, 이 순대는 예전 순대보다 더 쫄깃해요.”
“역시 선이가 맛을 알아. 순대는 돼지 소창을 주로 쓰는데 아바이 순대는 대창을 써. 대창이라 순대가 굵고 껍질이 두꺼워서 쫄깃해.”
선이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아하.”가 튀어나왔다.

 

“아바이 순대는 말이다. 1ㆍ4 후퇴 때 함경도에서 피난 온 사람들이 속초에 정착하면서 만들어 먹던 음식이야. 당시 북한의 피난민들은 1월의 칼바람과 배고픔을 참아 가며 지금의 속초 청호동에 터를 잡았지. 전쟁이 끝나고 돌아갈 날을 꿈꾸며 말이야.”
“어머님 멋지십니다. 선이야, 어머니 설명이 베리 굿이다.”
아저씨가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자 엄마가 머쓱한 듯 말했다.
“어머님 친구분께 자주 듣던 이야기였어요.”
아저씨가 선이를 보며 말을 이었다.
“청호동을 아바이 마을이라고도 해. 함경도에서 온 피난민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그렇게 부르지. 곧 끝날 줄 알았던 전쟁이 3년 동안 이어지다 휴전과 함께 휴전선이 세워졌어. 눈앞에 고향을 두고 갈 수 없는 상황이 된 거지. 고향이 그리웠던 청호동 사람들은 함경도에서 먹던 순대를 만들었어. 청호동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상을 차렸는데 그 누구도 순대에 선뜻 손을 대지 못했다고 해.”
“왜요? 먹고 싶었던 음식이었을 텐데.”
“그게 말이다. 피난 중에 잃어버린 가족과 고향에 두고 온 부모님, 친구들이 생각났거든.”
아저씨의 설명을 듣던 선이의 목소리에 슬픔이 담겼다.
“나는 엄마 아빠를 하루만 못 봐도 슬프던데…….”
“청호동 사람들은 고향이나 가족이 그리우면 순대를 만들었어. 함경도에서 먹던 대로 두꺼운 대창에 찹쌀과 야채, 고기를 넣고 가마솥에 푹 쪘지. 솥뚜껑 사이로 하얀 김이 솟아오르면 고소한 순대 향이 온 마을을 감쌌어. 순대 향을 맡고 하나둘 찾아온 사람들과 나눠 먹으며 그리움 대신 추억을 쌓기 시작했지.”
“이 순대가 고향 잃은 피난민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 주지 않았을까?”선이는 엄마의 말을 마음에 담았다.

 

/자료 제공= ‘역사로 보는 음식의 세계’(이은정 글ㆍ강영지 그림ㆍ크레용하우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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