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겼다김미영오른팔을계단 난간에 기대고목발 짚은왼손에 힘을 줬다.하나, 둘…몇 계단 내려갔는데발목이 욱신욱신!-포기할까?-안 돼생각 씨름하다가계단을 이겼다.나를 이겼다.-밖이다!마중 나온 명지바람이내 콧등을자꾸만 간질인다.오른팔을 계단 난간에 기대고 왼손은 목발 짚고 힘을 주면서 계단을 내려갔다고요? 오랜 투병 생활 끝에 마침내 일어나 걸을 수 있게 되었군요. 축하해요. 고생 많이 했어요. 다시는 다치지 말기를 바라요.발목이 욱신욱신거리지만 아픔을 이겨내고 계단을 내려갔다고 하니 재활 의지가 아주 강한 어린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나림이와 유미가 방에서 소꿉놀이를 하고 있어요. 둘은 동갑내기 유치원생이에요. 나림이 엄마와 유미 엄마는 장을 보러 나가서 지금 나림이네 집에는 둘만 있어요.잠깐 방을 나갔던 나림이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어요.“엄마아~!”“쨍그랑~!”유미가 깜짝 놀라 소리가 나는 데로 가 봤어요. 화장실 옆 장식장 앞에 선 나림이 오른 발 엄지발가락에서 피가 솟아나고 있었어요. 입을 비죽이던 나림이가 큰소리로 울어버렸어요.“엄마아~, 엄마!”피를 보고 겁을 먹은 유미도 울먹거렸어요. 그때 마침 현관이 열리며 나림이 엄마와 유미 엄마가 들어섰어요.나림
갈매기 의자 파도는바위를 다듬지노래로다듬지춤으로다듬지저 먼저부서지며철썩철썩하얀물결망치로갈매기 의자를만들지
아래층우승경띵동!앗, 아래층 아줌마다.쿵쿵 뛸 때도올라오지 않던 아줌마- 우리 조용히 놀았는데- 맞아, 살금살금 다녔잖아이때 들리는 아줌마 목소리-쌍둥이들 어디 아파요? 너무 조용해서 올라왔어요그 말 듣고- 우리 안 아파요, 건강해요쿵쾅거리며 뛰쳐나갔다.요즘 층간소음 문제가 하도 심각해서 살짝 긴장했는데요. 와, 다행이에요. 이런 고마운 이웃도 계셨네요. “쌍둥이들 어디 아파요?”하고 아래층 아줌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혹시 잘못 들었나? 귀를 의심했는데요. 다음 순간 마음이 딱 놓였어요. 정말 정답고 고마운 이웃이 아닐 수 없어
해수와 해치정혜원여름이 시작되자 햇빛이 금방이라도 다 쏟아져 내릴 것 같이 강하게 비췄다. 이제 선글라스와 창 넓은 모자는 필수가 되었고 그나마 거리에 다니는 사람도 만나기 힘들었다. “햇살이 너무 강해서 우리 모두 눈머는 거 아니야.”해수 엄마가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주차장으로 갔다. “이게 다 해치 때문이야.”해수가 뜬금없이 대답했다. “해치가 누군데?”해수 엄마가 갑작스런 해수의 말에 당황했다.“‘해치와 괴물 사형제’란 옛날이야기를 보면 괴물 사형제가 해를 네 개로 잘라놓았는데 해치가 사형제를 물리치고 해를 다시 붙여서 하늘에
초보 알바 봄바람권영상나는 뭔가 일하고 싶었죠.혼자 마을로 내려와골목길을 지날 때 음식점 유리창에 붙은광고지를 보았죠.‘초보 알바 환영’문을 두드리자 빠꼼이 주인이 문을 열어주었죠.나는 가볍게 들어섰고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일을 찾아했죠.우선 눅눅한 음식점 안을 한 바퀴휘익, 돌았죠.젖은 식탁을 뽀독뽀독 닦았죠.창가 화분의 꽃망울을 톡톡톡 피웠죠.나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소리쳤죠.아, 산뜻해. 알바가 바뀌었어!나는 초보 알바,봄바람이죠.
밀려난 기분이성자할머니 집에 갔는데낯선 친구가 다가온다.- 안녕하세요? 저는 간병 로봇 로사에요.친절한 인사에당황해서멍하니 서 있는데- 할머니 약 드실 시간이에요. 물 갖다 드릴까요?나보다 먼저 할머니를 챙긴다할머니 도와드리려 왔는데밀려난 기분이다.시간 여행자처럼 미래의 어느 날 일어날 일을 미리 보여주는 시입니다. 머지않은 미래에, 어쩌면 지금 당장이라도 간병 로봇이 등장해서 아픈 사람을 간호해 줄 수 있을 거예요. 오늘날 과학 문명은 놀라울 정도로 발전하고 있으니까요. 할머니를 직접 간병해 드리고 싶은데 로사에게 밀려난 기분이
꽃가족박옥경가시가 있다고멀리하지 않지계란 닮은 망초꽃가느다란 꽃대쓰러질까 봐그 옆에 기대주는아무리 봐도하늘에서 내려온 것 같은하늘빛 수국내가 가시 있는 장미라고아무도 멀리하지 않지한 꽃병 안에 살면서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피워내고 있지.꽃병 안에는 망초, 수국, 장미 등 여러 꽃이 함께 꽂혀있어요. 이 꽃들은 가시가 있는 장미를 멀리하지 않고요, 쓰러질 것 같은 망초꽃을 잘 받쳐주고 있어요. 그러니까 장미는 가시가 부드러워져서 남을 찌르지 않게 되고요. 쓰러질 것 같던 망초꽃이 바로 서서 환하게 웃고 있어요. 마치 지금이 세상
참으려고 했는데최진약한 불에 올린 주전자처럼처음엔 조금 뜨뜻할 뿐이었어그러다가 보글보글 끓더니나중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거야마침내 펑!뚜껑이 열리고 말았지.그때 함께 튀어나온 거야해서는 안 되는 말-너하곤 다시는 안 놀아!조금 더 참았어야 했는데요. 해서는 안 되는 말, 하고 나니까 시원했나요? 아니면 후회가 되던가요? 참는 길에 더 참았으면 친구와의 사이는 더 나빠지지 않았겠지요. 이제는 엎지러진 물, 친구와의 사이는 옛날로 돌아가기 힘들어졌어요.하지만 생각해 볼 점이 있어요, 과연 내가 참기만 했다면 친구가 내 마음을 이해하고
“앗!”다봄이는 깜짝 놀라서 두 눈을 비볐어요. 파란 불이 켜져서 찻길을 건너는데, 찻길 한가운데 노란 우산이 펼쳐져 있었어요. 어디서 많이 본 노란 우산이었어요. 게다가 노란 우산 안에 하얀 고양이가 오도카니 앉아 있는 거예요.“금방 빨간 불이 켜진다고! 여기는 위험한 곳이야.”다봄이는 노란 우산을 번쩍 들었어요. 눈이 동그래진 하얀 고양이를 향해 오른손을 부채처럼 펄럭거렸어요.“알았다옹.”하얀 고양이는 사람처럼 말을 하더니 다봄이보다 훨씬 빠르게 길을 건넜어요. 다봄이는 차가 다니지 않는 공원에 노란 우산을 활짝 펼쳐 주었어요.
나는 산만해! 선생님은 몰라 아무것도 몰라얼마나 수업시간에 꾹 참고 있는지 몰라딴짓하면 시간이 총알방귀처럼 지나가는지 몰라쉬는 시간에 책상 위를 왜 뛰어다니는지 몰라자꾸자꾸 “산만해!”“, 산만해!” 야단만 쳐나는 막 기지개를 켜고, 산(山)보다 커지는데
우리 동네우동식삼거리 미용실은예쁘데이학교 앞 떡볶이집은맛있데이시장통 원조식당은진짜데이골목길 치킨집은꼬꼬닭데이우리 동네 사람들은날마다 신난데이‘나’는 지금 누군가에게 ‘우리 동네’를 열심히 소개하고 있어요. 느껴지지 않나요? 내가 우리 동네를 얼마나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지요.삼거리 미용실, 학교 앞 떡볶이집, 시장통 원조 식당, 골목길 치킨집 등 어느 동네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가게라고 말할지 모르지만요. 우리 동네에 있는 이 가게들은 좀 달라요. 어떻게 다르냐 하면요. 가게마다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장사하면서도 친절하고 인심
안수연(아동문학가)샹들리에가 반짝이는 넓은 궁전. 친구들의 축하 속에 나는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있어. 테이블에 핑크빛, 초록빛, 보랏빛 리본으로 포장된 선물이 가득해. 특히 컬러플한 5단 생일 케이크는 나를 더욱 돋보이게 하고. 방안을 가득 채운 음악소리와 함께 진우가 하얀 양복을 입고 나에게 손을 내밀어. 나는 들고 있던 달콤한 망고 주스를 내려놓고 진우의 손을 잡아. 그리고 음악에 맞춰 쿵 짝짝, 쿵 짝짝. 아, 행복해. ‘음냐냐, 음냐냐~’햇살의 간지럽힘이 나를 깨웠나 봐. “아, 이게 뭐야….”조용하다 못해 고요한 공기가
별들의 유치원조오복(아동문학가) 밤하늘은 별들의 유치원이에요은하수반, 샛별반, 북두칠성반…반짝반짝, 반짝반짝, 반짝반짝…모두 모여서사이좋게 놀아요달님도 자주 와서함께 어울려 놀다 가요.
개나리 꽃담유이지“우리 집은 벽돌담이다!”“우리 집은 돌담인데.”“우리 집은…, 개나리!”봄이네도 담이 생겼다개나리꽃필 때만 보이는샛노란 꽃담.벽돌담은 높고 단단하죠. 때로 철조망을 치기도 해요. 그래서 담 넘어 볼 수도 없고 누가 사는지도 알 수 없어요. 담길을 지나면서 보면 지붕만 조금 보여요. 마치 너와 나는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인 듯 모른 척 살자고 그러는 것 같아요.돌담은 그래도 낫죠. 까치발을 뜨면 집안을 들여다볼 수 있고요. 돌담 너머로 집주인과 인사도 나누고,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요. 그럼, 개나리 꽃담은 어떤가요
변합니다문성란쇠도 플라스틱도언제나 그 이름재활용돼 다시 태어나도변하지 않아요하지만나뭇잎은 달라요1년 살고 나면이름도 모양도 색깔도지웁니다다 비우고변합니다거름 먹고 자랐다고거름이 됩니다문득,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서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요. 생명이 없는 것들은 재활용해도 그 이름 그대로 갖게 되지만 생명이 있는 것들은 쉴 새 없이 모습이 변하지요. 다만, 변화의 속도가 느려서 우리가 잘 느끼지 못할 뿐이어요. 나뭇잎도 마찬가지입니다. 봄에는 파릇파릇 새잎 되어
서울 광화문 광장에 세워진빨간색 온도계사랑의 온도탑.이웃 사랑 모금이나눔 목표액 1% 모이면1도씩 올라 간데요.한 겨울 추위에도사랑의 온도는 33도.따뜻한 마음들이 모이면자꾸자꾸 올라가죠.어서어서 돕는 손길 이어져100도까지 뜨겁게 뜨겁게사랑의 온도 올라갔으면.큰 칼 잡고 높이 서 계신충무공이 흐믓한 얼굴로내려다보시네요.
해거름이 되고서야 더위가 조금 누그러집니다. 학원을 나서는 민재 얼굴이 잔뜩 찌푸려 있습니다. 영어를 배운 첫날부터 숙제도 잔뜩입니다.살랑바람이 불어와 코를 간질입니다. 코코넛처럼 달콤하면서도 향긋한 냄새가 코끝을 훅 스칩니다. 발아래로 갸르스름한 것 하나가 또르르 굴러옵니다. 연두색 바탕에 자줏빛이 도는 열매입니다. 민재는 그것을 냉큼 집어 듭니다. 손으로 만지니 몰랑몰랑합니다. 살짝 벌어진 틈으로 빨간 속살이 보입니다. 단풍나무 아래 쭈그려 앉아있는 할머니가 보입니다. 저도 모르게 발길이 움직입니다. 할머니 앞에 놓인 상자가 눈
노란 칸나이옥근빨간 칸나인 줄 알고 심었는데노란 꽃이 피었다며엄마는 아쉬워했다 학원 선생님과 통화한 엄마좋은 성적 기대했을 텐데도날 보며 엄지척그리곤, 말이 없다노란 칸나가 된 나는엄마에게 미안했다날 보며 엄지 척하고 아무 말도 없는 엄마, 그게 오히려 더 마음 아파요. 차라리 화를 냈으면 덜 미안했을 텐데요. 내가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아 그런가요? 당장은 최선을 다한 것 같아도 지나고 나면 부족했다고 느낄 때가 많아요. 열심히 하는 것과 최선을 다하는 것은 같은 듯 다르지요. 그러니까 먼저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끊
깜찍이는 친구 천사들과 하늘 계곡으로 갔어요.“랄라라, 우리는 수호천사!”“아이들의 좋은 친구가 되어 줄 거야.”친구 천사들은 날개에 묻은 먼지를 씻었어요. 하지만 깜찍이는 하늘 계곡에 갈 때마다 바위 뒤에 숨었어요. 씻는 게 너무나 싫었거든요. 드디어 아이들을 만나러 땅세상에 가는 날이에요. 날개를 펴고 아이와 눈을 맞출 때, 웃어주는 아이가 수호친구예요. 깜찍이와 천사 친구들은 은가루와 궁금거울을 날개 안쪽 주머니에 넣었어요. 은가루는 마음을 나눌 때 쓰고, 거울은 궁금한 게 있으면 꺼내 보려고요. 특히 궁금거울은 누가 보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