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에서 똥까지 무엇 하나 버릴 것 없는 소
역사학자들은 소가 가축화된 것을 기원전 7000~6000년경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 지역으로 보고 있어. 우리나라는 김해의 패총에서 2000여 년 전의 소뼈가 발굴되기도 했지. 
유럽에서는 우유와 버터, 치즈, 소고기 등의 식품을 얻기 위해 소를 키웠어. 다른 나라에서는 농사를 짓는 데 소를 활용했어. 소의 노동력이 중요했기 때문이야. 

농사가 기본이었던 우리나라는 신라 지증왕 때 소를 이용해 밭을 가는 ‘우경법’을 장려했어. 소가 중요했던 만큼 정월 대보름에 소에게 오곡밥과 나물을 주며 애지중지했지.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는 소를 타고 다니기도 했어. 무거운 물건을 옮길 때에도 소를 사용했고 각궁을 만들기도 했어. 각궁은 소의 뿔로 꾸민 활을 말해. 
소의 가죽은 지갑이나 구두를 만드는 데 쓰였으며 소똥은 연료로 사용되기도 했어. 소똥은 구하기 쉽고 연기가 곧게 올라가기 때문에 봉화를 올리는 봉수대의 연료에 적합했지.


맥족이 즐겨 먹었던 고기 ‘맥적’
선이가 앞치마를 두르고 엄마 옆에 섰다. 엄마는 소고기를 쟁반에 담아 키친타월로 꾹꾹 누르고 있었다. 
“뭐 해?”
“핏물을 제거하는 거야. 이렇게 해야 잡내를 없앨 수 있거든.”
“후춧가루나 청주로 고기 잡내를 없앤다고 하지 않았어?”
선이는 엄마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물었다.
“그렇긴 한데 향신료를 쓴다 하더라도 고기 특유의 잡내를 잡기 위해서는 핏물부터 빼야 해.”
“불고기 빨리 먹고 싶다. 근데 엄마, 불고기는 어떻게 붙여진 이름이야?”
“불에 구워 먹는 고기라는 뜻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소금 간만 해서 굽는 고기를 소금구이라고 불렀어. 대신 불고기는 양념해서 익힌 고기로 바뀌었지.”
엄마가 큰 그릇에 간장과 설탕, 마늘과 같은 양념을 섞으며 말을 이었다.
“불고기란 단어는 1950년대 이후부터 사용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어. 1950년대 이전의 문헌에서 불고기라는 단어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야.”
현관문이 열리면서 할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주방으로 들어온 할머니는 새끼손가락으로 양념을 찍어 맛보며 단맛이 덜하다고 했다. 엄마가 배를 강판에 가는 것을 보며 선이가 물었다. 
“불고기는 먹은 지 얼마나 됐어요?”
그러자 엄마가 대답했다.
“고구려의 맥적을 불고기의 기원으로 본단다. 맥적은 장이나 마늘로 양념한 고기를 꼬챙이에 끼워 숯불에 구워 먹은 음식으로, 맥은 맥족이나 예맥족을 이르는 말이야.”
“맥족? 처음 들어 보는데.”
선이가 엄마의 설명을 끊으며 말했다. 엄마는 배를 갈아 넣은 양념장에 소고기를 조물조물 버무리며 말했다.
“맥족은 한반도 북부와 중국의 동북부에 살던 민족으로 고구려와 부여에 살던 사람들을 말해. 이들이 즐겨 먹었던 고기를 맥적이라 하는데, 이것이 불고기의 원조라 보는 거야. 3세기경 중국 진나라의 『수신기』에 ‘맥적은 양념이 되어 있어 장에 찍어 먹을 필요가 없다.’라는 기록이 있거든.”
“하지만 불고기의 유래를 고구려의 맥적에서 찾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의견도 있어.”
할머니가 엄마의 말끝을 잡아 덧붙였다. 그러자 엄마는 고기가 타지 않도록 휘저으며 말을 이었다. 
“사냥을 즐겼던 고구려인들은 집에 고기 창고를 만들어 고기를 저장했어. 고구려 안악 3호분 벽화를 보면 확인할 수 있지. 고구려인의 육식 습관은 고려 시대의 불교 정책으로 쇠퇴했어. 불교에는 동물을 죽이면 안 된다는 교리가 있거든. 하지만 고려 시대 몽골의 침략 이후 고기를 주로 먹는 몽골인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맥적이 ‘설야멱적’이란 이름으로 등장했어.”
이번에는 할머니가 설명했다.

“설야멱적은 눈 오는 밤에 찾아 먹는 고기구이로 같은 고기라도 눈 오는 밤에 즐기면 더욱 맛있다는 뜻을 담고 있어. 조선을 대표하는 풍속화가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니?”
할머니 물음에 선이가 냉큼 대답했다.
“김홍도요?”
“맞다, 김홍도. 김홍도가 설후야연이란 이름으로 그린 병풍이 있는데 눈이 소복이 쌓인 들판에서 소고기를 구워 먹는 양반들의 모습을 담고 있어.” 
“조선 시대에도 소고기는 인기 있는 음식이었네요. 할머니, 그런데 설야멱적이 불고기가 된 거예요?”
엄마가 당면이 잘 익도록 냄비 뚜껑을 덮으며 말했다. 
“설야멱적이라 불리던 음식이 너비아니로 바뀌었어. 너비아니는 임금님 수라상에 오르던 음식이었어. 1800년대에 쓰인 『시의전서』에서 고기를 얇게 저며 양념한 것을 너비아니라 한다는 기록에서 알 수 있지. 너비아니는 상을 차리기 바로 직전에 구워야 해.상궁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끝에 찾은 방법이 지금의 불고기야.” 
엄마가 작은 접시에 불고기와 국물을 담아 할머니와 선이에게 주었다. 선이는 국물부터 마셨다. 달달하고 고소한 육수가 입안에서 춤을 추는 듯했다.   

 

/자료 제공= ‘역사로 보는 음식의 세계’(이은정 글ㆍ강영지 그림ㆍ크레용하우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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