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고급 식재료였던 밀
밀은 기원전 1만 년경에 서아시아의 메소포타미아와 이란 일대에서 처음 재배됐어. 이후 기원전 100년경에 중국을 거쳐 삼국 시대 즈음에 우리나라로 전래됐지. 우리나라는 쌀과 밀 중에서 무엇을 좋아했을까? 당연히 쌀이야. 우리나라는 쌀을 주식으로 하는 밥 문화가 발달했기 때문이지. 밀을 선호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다루기가 쉽지 않아서였어. 밀은 낟알이 쌀이나 보리처럼 단단하지 않고 잘 부서졌어. 대신 낟알을 싸고 있는 겉껍질은 단단했지.

고려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고려도경』에는 ‘국수는 밀가루값이 매우 비싸서 결혼식 때가 아니면 먹지 못하는 음식’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조선 시대 때 궁중 연회 음식에 대한 내용을 실은 『진찬의궤』와 『진연의궤』에는 연회 때마다 국수장국을 대접했다는 기록을 찾을 수 있지. 
우리나라는 밀 수확이 많지 않았던 터라 주로 중국에서 밀가루를 수입했어. 백성들은 수입한 밀가루를 쉽게 구할 수 없었고 양반들도 비싼 밀가루를 자주 이용할 수 없었어. 이런 이유로 밀가루는 집안의 중요한 행사나 혼례 때만 사용했어. 그래서 가루 중의 가루라는 의미로 ‘진말’이라 부르기도 했지.

 


궁중떡볶이, 밀을 만나 서민 간식이 되다
“쌀이랑 밀로 만들어 봤는데 어느 쪽이 나은지 말해 줘야 해.”
엄마가 쌀떡볶이와 밀 떡볶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눈으로 보기에는 차이가 없어 보였다. 모양과 색이 똑같았기 때문이다. 
“쌀떡이 밀떡보다 조금 더 두꺼워.”
그러고 보니 두께와 윤기가 달라 보이긴 했다. 선이는 쌀떡볶이를 먼저 맛보았다.  
“엄마, 밀 떡볶이가 더 맛있어. 내가 자주 가는 떡볶이집이 있는데 거기 떡도 이 떡처럼 쫀득쫀득하거든.”
“맛 하면 쌀떡볶이지.”
선이의 말을 끊은 것은 할머니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엄마가 나서 설명했다. 
“쌀떡볶이는 조선 시대에 궁궐에서 먹던 음식이었어. 떡국을 끓이고 남은 가래떡에 소고기와 야채를 넣고 간장으로 맛을 낸 궁중떡볶이가 떡볶이의 시작이었지.”
“가래떡도 처음에는 쌀에 밀가루를 섞었는데 걱정과 달리 맛이 좋았어. 차츰 쌀가루보다 밀가루 양을 늘리면서 밀가루만으로 가래떡을 만들기도 했지. 어떤 상인이 시장에서 솥뚜껑을 엎어 놓고 기름에 볶은 밀떡을 만들어 팔았는데 맛이 좋아 손님이 줄을 이었어. 색다른 간식거리였던 거지.”
선이가 떡볶이를 먹으며 물었다.
“그럼 언제부터 빨간 떡볶이가 된 거야?”
“신당동에서 보따리장수를 하던 마복림 할머니가 원조지. 손님을 만난 할머니가 당시 유행했던 중국 음식점을 방문했어. 손님을 위해 짜장면을 주문했는데 그때 가래떡이 함께 나왔지 뭐야. 옛날에는 새로 가게를 열거나 이사를 가면 떡을 만들어 나눠 먹는 풍습이 있었거든. 배가 고팠던 할머니가 가래떡을 먹다가 실수로 짜장면에 떨어뜨렸어. 그런데 이게 웬일. 짜장면 소스가 묻은 떡의 맛이 기막힌 거야. 춘장 맛에 반한 할머니는 고추장에 춘장을 섞어 떡볶이를 만들자고 생각했지. 이렇게 탄생된 밀 떡볶이는 순식간에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어. 더군다나 밀로 만든 떡볶이는 쌀이 들어가지 않아 정부에서 실시했던 분식 장려 운동에 딱 맞았던 거야.”
“밀떡은 쌀떡이랑 씹는 맛 자체가 다른 것 같아.”
“쌀은 끓이는 과정에서 풀어지지만 밀떡은 쫄깃한 맛을 오래 느낄 수 있기 때문이야.”
“내가 먹기에는 쌀떡이 부드럽고 좋은데.”
할머니 말에 선이는 밀떡이 더 좋다고 했다.
“마복림 할머니 손에서 탄생된 떡볶이는 이후 다양한 재료를 넣어 직접 끓여 먹는 즉석 떡볶이가 되었어. 좋아하는 것은 넣고 싫어하는 것은 빼고. 요즘에는 카레나 짜장, 그리고 칠리소스, 치킨을 넣는 등 더 다양하게 발전했지.”

 

/자료 제공= ‘역사로 보는 음식의 세계’(이은정 글ㆍ강영지 그림ㆍ크레용하우스 펴냄)

저작권자 © 소년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