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다. 엄마, 저기 봐.”
선이의 목소리가 한껏 들떴다. 법성포에 도착한 엄마의 얼굴에도 잔잔한 미소가 흘렀다. 주차를 마친 엄마가 전화를 했다. 
“미숙아, 도착했어. 식당으로 갈게.”
선이와 엄마가 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식당 문이 열리며 빨간 앞치마를 두른 미숙 이모가 나왔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인 미숙 이모와 엄마는 부둥켜안고 폴짝폴짝 뛰었다. 
식당으로 들어선 선이는 배가 고팠던 터라 메뉴판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영광에 왔으면 굴비를 먹어야지. 좀만 기다려. 금방 차려 줄게.”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굴비찜, 굴비구이, 굴비 조림, 굴비 매운탕, 갖가지 밑반찬으로 상다리가 휘어질 지경이었다. 
“이것부터 먹어 봐. 이자겸의 입맛을 사로잡은 굴비구이야.”
마지못해 굴비를 입에 넣은 선이는 생각지도 못한 맛에 깜짝 놀랐다. 짭조름하고 고소한 맛과 쫀쫀한 식감이 좋았다.
선이를 보며 미숙 이모가 말했다.
“얼마나 맛있으면 귀향 온 이자겸이 임금에게 보냈을까.”
선이는 어렴풋이 이자겸에 대해 떠올랐다. 미숙 이모가 자리를 비운 사이 선이가 물었다. 
“엄마, 역사책에 나오는 그 이자겸 맞아?”
“응, 고려의 귀족이었던 이자겸은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 자신의 딸을 예종에게 시집보냈어. 예종과 왕후 사이에 태어난 인종은 열네 살의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는데, 이자겸은 자신의 셋째와 넷째 딸을 인종과 혼인시켰어.”
“엄마, 그래도 되는 거야? 이자겸의 딸이면 인종에게 이모 아닌가?”
“권력을 잡기 위한 욕심에 딸들이 희생된 거라 볼 수 있지. 결국 이자겸은 인종의 외할아버지이자 장인어른으로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어.” 
“그런데 말이야, 이자겸이 승승장구하며 세상을 호령하는 동안 인종이 성인이 되었단다.”
미숙 이모가 엄마 옆에 앉으며 말을 보탰다. 
“성인이 된 인종은 이자겸을 제거하기로 결심했어. 하지만 왕실에 그의 사람이 많았던 탓에 실패했어. 이후 조정을 장악한 이자겸은 왕 노릇을 하고 인종을 서원에 감금했어. 그러던 어느 날 인종은 이자겸과 척준경 사이가 틀어졌다는 소식을 들었어. 인종은 척준경의 힘을 이용해 이자겸을 제거하려는 계획을 세웠지. 그 뒤 척준경은 군사를 이끌고 이자겸을 잡아들였어. 인종은 붙잡힌 이자겸을 죽이고 싶었겠지만.”
“살린 건 아니죠?”
선이의 입에서 튀어나온 밥알이 굴비 조림 위에 붙었다. 엄마가 밥알을 떼며 말했다.
“그때 이자겸이 죽었다면 굴비라는 이름도 없었겠지?”
“아하, 생각났다. 이자겸이 임금에게 굴비를 선물로 보냈다고 했지.”
“선이, 똑똑하네.”
미숙 이모가 선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인종은 차마 이자겸을 죽이지 못하고 영광으로 유배를 보냈지. 유배 중에 조기를 맛본 이자겸은 그 맛에 반했어. 진귀한 물품이나 지방의 특산물은 임금에게 진상해 왔던 터라 이자겸은 조기를 인종에게 보내기로 마음먹었어. 조기를 앞에 둔 이자겸은 아닐 비(非), 굽히다 굴(屈)의 뜻인 비굴의 글자를 바꿔 굴비라는 이름을 지어 인종에게 보냈어. 선물은 보내지만 비굴하게 살지 않겠다는 거지. 그리고 그는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어.”
“근데 엄마, 영광에서 한양까지면 꽤 먼 거리인데 조기가 상하지 않았을까?”
“그건 이모가 설명할게. 당시 이자겸이 보낸 것은 꼬들하게 말린 조기였어. 냉장 시설이 없던 시절이라 오래 보관하기 위해 소금 간을 해서 말렸거든. 이때부터 소금으로 간해서 말린 조기를 굴비라고 불렀어. 이제 이자겸이 유배 생활을 했던 법성포도 둘러봐야지.”
선이는 숟가락 가득 담긴 굴비를 입속으로 넣으며 이자겸이 굴비 먹는 모습을 상상했다. 이자겸이 이렇게 묻는 듯했다.
‘이름 잘 지었지?’

 

/자료 제공= ‘역사로 보는 음식의 세계’(이은정 글ㆍ강영지 그림ㆍ크레용하우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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