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오랜 친구, 닭
1년에 600억 마리 이상을 소비할 만큼 인류는 닭의 매력에 푹 빠져 있지. 그렇다면 닭은 언제부터 인간과 함께 생활했을까?

닭의 시초는 붉은야생닭으로 성질이 사납고 동작이 재빨랐어. 이 닭은 5000년 전에 동남아시아 지역인 베트남과 미얀마 등지에서 가축화되었어. 가축화된 닭은 야생에서 살 때보다 몸집이 커져 고기의 양도 많고 육질도 부드러워졌어. 닭은 사람들의 이동 경로를 따라 전파되었어. 우리나라에 닭이 들어온 것은 2000년 전 즈음으로 추정해.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났다는 신라의 건국 신화와 신라의 탈해왕이 닭 울음소리를 듣고 태어났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어.
1973년에 신라 시대의 고분인 천마총에서 달걀이 출토되기도 했어. 당시 닭을 길렀다는 기록은 없지만 달걀이 귀한 물건이라 왕릉에 묻혔음을 추측할 수 있지. 
조선 시대에는 닭을 길조와 다산의 상징으로 여겨 왕실 마당에서 기르거나 닭 그림을 집 안에 걸었어. 닭 볏이 관직을 의미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야. 중요한 날이나 중요한 손님에게는 닭 요리를 올리기도 했어. 또 더위를 이기기 위해 보양식으로 먹었는데 복날마다 닭을 찾은 이유가 무엇일까?


삼계탕이 아니라 계삼탕이라고?
“선이야, 주말 약속 잊지 않았지?”
“무슨 약속?”
“경로당에 삼계탕 봉사 있다고 했잖아. 음식하려면 장도 봐야 하는데 오늘 학원 안 가지?”
선이는 얼떨결에 엄마를 따라 마트로 향했다. 
“우리 선이, 복날에 삼계탕 먹는 이유는 알아?”
엄마의 기습 질문이었다. 
‘지난 사회 시간에 배웠던 것 같은데.’선이는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못한 것이 후회됐다. 
“복날은 음력 6월에서 7월 사이에 초복, 중복, 말복이 되는 날로 가장 더운 때를 말해. 복날의 ‘복(伏)’자는 사람이 개처럼 납작 엎드려 있는 형상을 따서 만들어졌어. 가을의 기운이 내려오다가 가시지 않은 더위에 눌려 기세를 펴지 못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 최남선이 지은 『조선상식』에는 복날을 서기제복이라고 표현했는데 더위를 피하지 말고 꺾으라는 말이야.” 
“엄마, 더위를 어떻게 꺾어?”
“삼복더위에 지치지 말고 더위를 정복하라는 뜻이지.”
엄마와 선이가 웃으며 도착한 곡식 판매대에는 찹쌀을 사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삼이 들어가서 삼계탕인가?”
“빙고. 삼과 함께 삼계탕에 들어가는 재료로는 대추, 마늘, 각종 약재가 있는데 닭의 잡내를 제거하고 몸에 이로운 작용을 하는 것들이야. 이번엔 닭을 보러 갈까?”
닭 판매대에 도착한 엄마는 삼계탕에 들어갈 닭을 찾았다.
“닭도 종류가 있어?”
“삼계탕에 사용하는 닭은 영계야. 알을 낳지 않은 어린 닭이란 뜻으로 ‘약병아리’라고 하기도 해.”
큰 닭을 가리키던 엄마는 이런 닭은 푹 삶아 먹는 백숙용이라고 했다. 삼계탕에 사용하는 영계는 닭 한 마리를 한 사람이 먹기 때문에 닭이 가진 영양분을 고루 섭취할 수 있다는 말에 선이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백숙은 인조 임금과 관련이 있어. 인조는 명나라와 친하게 지내면서 후금을 멀리하는 정책을 펼쳤지. 힘을 키운 후금은 나라의 이름을 청으로 바꾸고 조선에게 신하의 나라가 될 것을 강요했어. 조선이 거절하자 청의 황제가 직접 1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 왔고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했지.”

 

“임금이 백성을 버리고 도망간 거네.”
선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엄마가 말을 이었다.
“한겨울의 추위를 이겨 내며 청의 공격을 막아내려 했으나 역부족이었어. 인조는 항복을 선택했지. 이때 인조의 음식을 담당했던 대령숙수가 마지막 남은 닭으로 백숙을 만들어 대접했다고 해. 백숙을 받아 든 인조는 굶는 군사들과 신하들 생각에 차마 음식을 먹을 수 없었는데, 신하의 거듭된 권유에 마지못해 다리 하나만 먹었대. 지금도 남한산성 일대에는 백숙을 파는 식당이 아주 많지.” 
엄마의 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선이가 물었다. 
“백숙에 담긴 이야기가 슬프긴 한데 백숙이랑 삼계탕의 주재료는 닭이야? 삼이야?”
“닭이 주재료지. 그래서 『동국세시기』같은 책에는 ‘계삼탕’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닭의 한자가 계(鷄)인지라 닭을 앞에 놓았던 거지.”
“계삼탕? 계 자가 앞에 있어 그런가? 발음이 어려운 거 같아.”
“외국인들이 발음하기 어렵다고 해서 삼계탕으로 바꾸었다는 설도 있어.”
“계삼탕보다는 삼계탕이 쉽긴 하다.”
“그렇지, 또 다른 이야기로는 닭이 주된 재료이긴 하지만 인삼을 강조하기 위해 삼을 앞에 넣었다는 설도 있어.”
“삼계탕에 얽힌 이야기를 듣다 보니 삼계탕이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아. 집에 빨리 가서 삼계탕 먹자, 엄마.”


[ 더 알아볼까? ]

꿩 대신 닭의 유래
‘꿩 대신 닭’은 설날 음식에서 유래된 속담이야. 우리나라에서는 설날 아침에 ‘떡국’을 먹는데 떡을 넣고 끓인 탕이란 뜻으로 ‘병탕’ 또는 ‘병갱이탕’이라고도 불렀지.
떡국은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을까? 아쉽게도 언제부터인지 정확한 기록은 없어. 하지만 조선 시대 세시풍속을 기록한 『동국세시기』에 ‘섣달 그믐밤에 한 그릇씩 먹었는데 이것을 떡국이라 한다’라는 내용이 있어서 오래전부터 먹었던 음식으로 추측하고 있어.
오늘날 떡국을 끓일 때는 소뼈를 우려낸 사골이나 멸치 다시마 육수를 사용해. 그러나 농사를 지어 생활하던 농경 사회에서는 노동력을 제공하는 소가 무척 귀한 동물이었어. 그래서 소뼈나 육수를 사용하기 어려웠지. 조선 시대에는 떡국에 꿩을 넣고 끓였다고 해.

 

꿩고기는 고려 후기 때부터 먹었는데 원나라로부터 전해진 매사냥이 귀족들 사이에 퍼지면서 꿩을 잡아 떡국을 끓였던 거야. 꿩을 삶은 육수에 떡을 넣고 끓인 후 꿩의 살을 고명으로 올린 떡국은 입안에서 사르르 녹을 만큼 맛있는 요리였대. 그러나 아쉽게도 평민들은 꿩으로 만든 떡국을 먹을 수 없었어. 평민들에게 꿩은 값비싼 재료인 데다 구하기도 쉽지 않았거든. 고민을 하던 어느 농부의 아내가 집에서 기르던 닭을 삶아 떡국을 끓였어. 꿩만큼 진한 맛이 우러나진 않았지만 꽤 맛이 좋았지. 그래서 생긴 속담이 ‘꿩 대신 닭’이야. 이 속담은 계획에 차질이 생겨 그와 비슷한 것으로 대신하는 경우를 비유하는 말로 쓰이고 있단다.

/자료 제공= ‘역사로 보는 음식의 세계’(이은정 글ㆍ강영지 그림ㆍ크레용하우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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