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도>를 그린 조선의 풍속화가 - 신윤복
나는 그림 그리는 일이 아주 익숙했어. 우리 집안에 화가가 많았거든. 우리 아버지는 도화서에서 일하는 뛰어난 화가였어. 도화서는 나라에서 필요한 그림을 맡아 그리던 곳으로 그림 솜씨가 아주 빼어난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었지.
나도 도화서에서 나라 행사 때 쓰이는 그림들을 그렸어. 그렇지만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은 따로 있었어. 바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그리는 거야.
나는 틈만 나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했고 생생하게 그림으로 옮겼어. 또 사람들이 잘 드러내지 않으려는 곳을 많이 그렸단다. 내 그림을 못마땅하게 생
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내 덕분에 후손들은 조선 시대 생활을 좀 더 알게 되었을 거야. 
나는 그림이야말로 자유롭게 세상을 보여 줘야 한다고 생각해. 내 그림을 보면 내 말을 이해하게 될 거란다.

“도화서에서 내쫓겨도 나는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릴 것이다!”
신윤복은 김홍도, 김득신과 함께 조선 시대 3대 풍속화가로 꼽혀요. 풍속화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지요. 김홍도가 농촌의 모습을 많이 그렸다면, 신윤복은 양반과 서민
이 한데 어우러져 사는 한양의 모습을 그렸어요. 그런데 신윤복의 그림은 늘 말썽이었어요. 단옷날 여자들이 계곡에서 목욕하는 모습이나 기생이 그려진 그림을 보고, 양반들은 펄쩍 뛰었지요.
“이런 천박한 그림을 그리는 화가를 도화서에 둘 수 없소.”
양반들의 성화에 신윤복은 결국 도화서에서 쫓겨나고 말았어요. 그래도 신윤복은 자기 뜻을 꺾지 않았어요. 
“화가가 어찌 남이 원하는 것만 그릴 수 있겠는가?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을 그려야지.”
신윤복은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그림에 옮기려 했어요. 그래서 신윤복이 남긴 그림은 조선 시대를 연구하는 좋은 자료로 쓰이기도 하지요. 살아 있는 동안 천박한 그림을 그린다고 설움을 받았던 신윤복! 하지만 이제는 조선 시대에 내로라하는 화가로 역사에 길이길이 기억되고 있답니다.

/자료 제공=‘GUESS? 교과서 인물 백과’(김해원 글ㆍ정경호 그림ㆍ이룸아이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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