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기둥이 서 있어. 그 위에 가로대가 하나 놓여 있는데, 새가 날개를 펼친 모습이야. 한눈에 한글 모음 ‘ㅠ’가 떠올라. 그런데 가로대 아래에 가로대가 하나 더 있어. 두 기둥에 구멍을 뚫고 가로대를 끼워 연결한 모습이야. 두 기둥이 넘어지지 않게 받쳐 주는 역할을 하고 있구나. 

얼핏 장식품 같아 보이는 이건 사실 문이야. ‘도리이’라고 부르지. ‘신사’라는 곳의 정문 역할을 해. 일본에 가면 흔히 볼 수 있지. 신사는 ‘신토(神道)’라는 종교의 의식을 행하는 곳이야. 기독교의 교회, 천주교의 성당, 불교의 절과 비슷하다고 보면 돼. 신토는 일본의 전통 종교야. 하늘과 동물 등 자연에 있는 온갖 것을 신으로 믿을 뿐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물건들에도 신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지. 조상님이나 역사 인물, 전쟁에서 죽은 사람도 신으로 모셔. 그래서 일본 ‘신토’에는 신의 수가 800만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어. 사진으로만 봐서는 알아채기 어렵지만, 사실 이 도리이는 도자기로 만든 거야. 도리이는 주로 나무로 만들어. 최근에는 돌이나 콘크리트, 철도 사용한다고 해. 그런데 이 도리이는 특이하게도 재료가 도자기야. 왜 도자기일까? 이 신사에 모신 신과 관계가 있을 것 같아.

막사발 하나로 적을 굴복시키다
일본은 오랫동안 중국 자기의 수입국이었어. 중국에 이어 우리나라가 자기 생산국이 된 뒤에도 일본은 오랫동안 자기 생산 기술을 갖지 못했지. 일본도 우리나라처럼 중국 불교의 영향을 받았어. 유학승을 통해 선종을 도입하면서 자기 찻잔 수요가 늘어났지. 신안선을 다시 떠올려 봐. 이 배는 중국에서 일본으로 가는 배였고, 2만 점이 넘는 도자기가 실려 있었어. 그만큼 일본인의 수요가 높았음을 신안선에서 발굴된 도자기들을 통해 알 수 있지. 
우리나라가 조선시대가 된 이후에는 조선의 도자기가 일본에서 유행했어. 당시 일본은 하나의 통일된 나라가 아니었어. ‘다이묘’라 부르는 수많은 지방 세력들이 서로 으르렁거리며 땅 따먹기를 하고 있었지. 이 시대를 일본에서는 ‘전국시대’라고 하는데, 특히 당시 다이묘들이 조선 도자기를 좋아했어. 조선의 고급 청자나 백자도 좋아했지만, 무엇보다 갖고 싶어한 건 조선의 막사발이야. 막사발은 우리가 보기에는 볼품없는 그릇일 뿐이야. ‘사발’ 앞에 붙은 ‘막’ 자는 ‘마구’의 의미야. 처음에는 밥이나 국을 담을 때 쓰다가 때 묻고 금이 가면 막걸리 잔으로 쓰고, 더 상하면 개밥그릇으로 쓰던 그릇인데, 일본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거야. 왜 그랬을까? 
일본도 우리나라처럼 선종이 들어오면서 차와 함께 자기 찻잔이 수입되었다고 했지? 차 문화는 명상을 해야 하는 승려들의 문화였는데, 일본의 귀족이나 무사들 사이에도 점점 퍼졌어. 그들은 화려한 집에 화려하게 꾸민 다실에 앉아 중국의 고급 자기 찻잔에 차를 마셨어. 그러다가‘누구 찻잔이 더 멋진가’ 하는 경쟁이 벌어졌고, 사치와 낭비가 점점 심해졌어.
이러한 차 문화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어. 형식에 치우치기보다 정신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며 소박함과 순수함을 강조했지. 여기에 공감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차 문화가 180도 바뀌었어. 이제는 꾸미지 않은 아주 작은 방을 선호하게 되었고, 찻잔도 보잘것없는 것을 사용하기 시작했어.
소박함과 순수함을 중시하는 생각이 퍼져 나가면서, 조선 막사발이 그들의 새로운 취향과 잘 맞아떨어지게 됐어. 조선 막사발은 모양도 좀 찌그러지고, 긁히거나 금 간 것 같은 자국도 보이고, 색도 일정하지 않고, 얼룩도 나 있고, 한마디로 말해 볼품이 없어. 하지만 그렇기때문에 오히려 꾸밈없고 솔직하고 자연스러워 보일 수 있는 거지. 일본인들은 이 막사발을 ‘다완’이라고 불렀어. ‘찻잔’이라는 뜻이야. 

전국시대의 다이묘 중에 오다 노부가나라는 사람이 있었어. 포르투갈 상인을 통해 일본에 들어온 조총을 대량 생산하고, 조총 전술을 창안해 다른 다이묘들을 물리치고 일본을 거의 통일한 사람이야. 하지만 그는 적을 이기기 위해 무력만 사용한 건 아니었어. 한번은 이런 적이 있었어. 다이묘들 중 가장 막강한 라이벌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고 조선 다완을 선물했어. 그랬더니 상대가 감동해서 오다에게 고개를 숙였지. 오다 노부나가는 전쟁도 잘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도 움직일 줄 알았지만, 자기 부하는 제대로 단속하지 못했어. 부하에게 배신을 당해 죽음으로 내몰렸지. 일본 통일이라는 목표는 후계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손으로 넘어갔어. 
도요토미도 오다처럼 다완을 전술에 사용했어. 예를 들면 이런 식이야. A가 도요토미에게 다완을 선물 받았어. 그런데 얼마 뒤 B의 공격을 받았지. A는 도요토미에게서 선물 받은 다완을 B에게 보여 주었어. 그건 “우리는 도요토미와 동맹을 맺은 사이야!”라는 뜻이야. 그러자 B는 부담을 느끼고 공격을 그만두었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 도자기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어. 
‘자기를 우리나라에서 직접 생산할 수 있다면…….’ 그동안 수많은 일본인들이 자기를 직접 생산하려다가 실패했어. 도요토미는 예전의 실패들을 교훈 삼아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 냈어.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자료 제공=‘세계사를 담은 도자기 이야기’(강창훈 지음ㆍ웃는돌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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