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빛이 도는 도자기 두 점이 나란히 서 있어. 위는 키가 21센티미터, 아래는 18센티미터, 아담한 단지구나. 둘 다 배가 불룩한 것이 공 모양에 가까워.
정면 사진이라 모두 보이지 않지만 두 점 모두 구멍이 있는 무언가가 여섯 개씩 달려 있어. 손잡이라고 하기엔 좀 작아 보여. 사람 귀를 닮은 이건 어디에 쓰는 걸까? 이런 도자기를 ‘귀가 여섯 개 달린 단지’라는 의미로 ‘육이호(六耳壺)’라고 불러. 귀가 네 개라면 ‘사이호’가 되겠지.
이 두 점의 도자기가 발견되었을 때, 그 주위에 구리로 만든 그릇과 청동 수저도 함께 있었어. 그릇도 두 벌, 수저도 두 벌이었지. 육이호도 두 점이니까, 혹시 두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좀 이상한 것이, 육이호 두 점 중 한 점에만 뚜껑이 있어. 처음부터 일부러 안 만든 것 같진 않고, 어디론가 사라져 찾지 못한 거라고 봐야겠지. 다섯잎꽃의 꽃잎 무늬 중심에 가운데가 푹 패인 네모난 꼭지가 있어. 이건 뭐지? 손잡이로 쓰기에는 작아서 불편했을 것 같은데. 

 

사실 이 도자기는 실생활에서 쓰던 것이 아니야. 집터가 아니라 무덤에서 발견되었지. 이 무덤의 이름은 ‘무령왕릉’, 백제 25대 임금 무령왕(462~523)의 무덤이야. 그런데 앞에서 육이호와 청동 그릇과 수저가 각각 두 벌이라고 했지? 그럼 무령왕 말고 묻힌 사람이 한 명 더 있다는 말인데, 누구인지 짐작이 가지? 무령왕릉은 백제 무령왕과 그의 왕비(?~526)가 함께 묻힌 무덤이야. 그러니까 이 육이호와 청동 그릇과 수저는 부부용 식기 세트인 셈이야. 물론 살아 있을 때 사용하던 것이 아니라 죽은 뒤 무덤에 함께 묻은 부장품이지만. 
무령왕릉에서는 육이호 두 점 말고도 술병으로 보이는 검은 도자기 한 점과 등잔으로 사용된 도자기 여섯 점까지 모두 아홉 점의 도자기가 발견되었어. 이 도자기들을 보니 어떤 생각이 들어? 앞서 살펴본 빗살무늬토기에 비해서는 세련되지만, 그리스 도자기나 진시황릉의 병마용과 비교하면 그저 그런 도자기로밖에 보이지 않아.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도자기는 앞서 살펴본 도자기들과 기술적으로 차원이 다른 도자기야!

차원이 다른 도자기, 자기
우리는 지금 도자기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 그런데 아직 한 번도 ‘도자기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하지 않았고 답도 하지 않았어. 이제 그 이야기를 할 때가 된 것 같구나.
도자기는 점토를 빚고 굳히고 열을 가해서 만드는 제품이야. 그 과정에서 빛깔이나 색, 내구성을 좋게 하려고 유약을 바르지. 도자기의 몸에 덧씌우는 약이라고 생각하면 돼. 
그런데 ‘도자기’는 ‘도기’와 ‘자기’가 합쳐진 말이야. 도기와 자기는 어떻게 다를까? 도기는 일반 점토를 사용하고, 불의 온도도 1000도 정도면 만들 수 있어. 자기는 ‘고령토’라는 특별한 점토를 사용하고, 불의 온도가 1200~1300도 이상이어야 만들 수 있지. 점토가 다르면 뭐 얼마나 다르기에? 200~300도 차이가 뭐가 그리 크다고? 
불의 온도가 높을수록 액화의 정도를 높여 더욱 단단한 도자기를 만들 수 있어. 그런데 옛날에는 온도를 1200~1300도까지 올리는 것이 무척 어려운 일이었어. 일부 지역에서, 그것도 아주 오랜 노력을 기울인 도공들만이 성공할 수 있었지. 그렇게 해서 높은 온도에 도달했다고 쳐. 그걸로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야. 일반 점토로 모양을 빚은 것은 높은 온도를 견디지 못해 찌그러지거나 터지고 말지. 반면 고령토는1200~1300도의 고온에서도 잘 견딜 수 있는 점토야. 이처럼 온도와 흙, 두 가지 조건이 모두 충족되어야 도기의 단계를 뛰어넘어 자기의 단계에 도달할 수 있지. 그렇다면 도기와 자기는 질적으로 어떻게 다를까? 자기는 도기보다 고온에도 잘 견딜 수가 있다고 했잖아? 그래서 도기보다 두께를 얇게 하는 것이 가능해. 단단한데 가벼운 거지. 좋은 점은 또 있어. 자기는 물이 새지 않아. 도기는 물을 담아 놓으면 겉보기엔 안 그럴 것 같아도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물이 새어나가 양이 줄어들지. 
자기는 실용적인 면에서도 도기보다 낫지만, 미적으로도 훨씬 뛰어나. 고령토에는 놀라운 성질이 하나 더 있어. 일반 점토보다 유리질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는 거야. 유리질은 말 그대로 유리의 성질을 지닌 암석을 말해. 그것이 높은 온도에 이르러 녹으면서 겉면을 코팅해 주지. 그래서 자기는 광택도 좋고 투명도도 높아서 도기보다 훨씬 아름다운 빛을 내지. 마치 투명한 유리컵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거야. 앞에서 본 돌니 베스토니체의 여인상과 빗살무늬토기를 떠올려보자. 이들은 둘 다 도기에 속해. 그리스 도자기와 진시황릉의 병마용 역시 도기지. 앞의 두 가지는 ‘토기’에 속하고 뒤의 두 가지는 ‘도기’에 속한다며 ‘토기 단계’와 ‘도기 단계’를 구분하기도 하지만, 크게 보면 모두 도기라고 볼 수 있어. 반면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도자기 아홉 점은 모두 자기야. 그렇다면 당시 백제는 자기를 생산할 수 있었던 걸까? 도기는 문명 좀 일구어 봤다 하고 자랑하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만들 수 있었어. 
자기는 그렇지 않아. 불의 온도를 높이고 고온을 유지하는 기술을 터득할 뿐 아니라 고령토를 얻을 수 있는 지역에서만 생산할 수 있었어. 고령토에 대해 알고 있는 유일한 곳이 중국이었지. 무령왕릉에 묻힌 자기들은 실은 중국에서 건너온 거야. 그럼, 중국에서 자기가 처음 만들어진 건 언제일까?

/자료 제공=‘세계사를 담은 도자기 이야기’(강창훈 지음ㆍ웃는돌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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