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다섯 사람이야. 살아 있는 진짜 사람은 아니지만 말이야. 이들은 흙을 구워 만든 인형이야. 윗줄 왼쪽 인형부터 볼까? 두 손을 모은 채 정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어. 오른손의 집게손가락 모양이 특이한데,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 건지, 아니면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구나. 다만 갑옷을 입고 있는 걸 봐서는 군사임이 틀림없어. 머리 장식과 옷 장식이 화려한 걸 보니 계급이 높은 장군일 것 같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풍채가 좋으니 더 그런 생각이 드는구나.

 

윗줄 오른쪽 인형은 첫 번째 사람보다는 계급이 낮아 보여. 그런데 두 팔과 두 손의 모양이 재미있어. 두 팔을 뻗어서 무언가를 잡고 있는 것 같지 않아? 이 사람은 전차병이야. 전차에 올라 말고삐를 잡고 있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지. 만들 때는 전차도 있고 말고삐도 있었지만 시간이 흘러 사라져 버리는 바람에 지금처럼 자세가 어색해졌지.
아랬줄 왼쪽 인형은 마치 장군의 막사로 들어와 무릎을 꿇고 급한 소식을 전하는 전령 같아. 자세히 보면 두 손의 모양이 특이해. 역시 무언가를 쥐고 있었던 것처럼 보여. 전령이 아닌가? 가운데 인형은 더 특이해. 마치 무술을 하려고 준비 동작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이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어. 무언가를 쏘고 있다는 거야. 무릎을 꿇은 인형은 쇠뇌를 들고 있었던 것 같아. 쇠뇌는 석궁이라고도 하는데, 활을 고정 틀에 물리고 화살을 올려 쏘는 무기야. 쇠뇌를 들고 앉은 채로 적을 조준하고 있지. 무술 자세를 한 것처럼 보이는 인형은 사실은 큰 활을 잡고 있는 거야. 화살을 장전하고 적을 조준하기 직전의 모습이지.
오른쪽 아래에 있는 병사는 가장 흔한 보병이야. 오른손 손가락 모양을 보니, 창을 하나 들고 있었을 것 같구나. 
지금까지 여러 군사의 모습을 하나씩 살펴보았어. 공통점은 모두 흙을 구워 만든 도자기라는 거야. 도자기 인형이란 뜻으로 ‘도용’이라고도 하지. 
이들은 1974년 중국의 시안이라는 도시에서 발견되었어. 놀라운 건 당시 발견된 전부가 아니라는 거야. 총면적 2만 제곱미터가 넘는 곳에서 발견된 군사 인형의 수가 무려 7천 개가 넘어! 모두 실제 사람과 크기가 거의 비슷하지. 흙을 구워 만든 전차 130여 대, 수레 끄는 말 500여 필, 기병이 타는 말 100여 필 등도 함께 발견되었어. 군사와 병마의 모습으로 만든 도용이라서 ‘병마용’이라고 부르지. 이 엄청난 것을 누가, 도대체 왜 만든 걸까? 

진시황제의 두 얼굴
병마용이 발견된 곳은 놀랍게도 황제의 무덤 근처야. 진시황제의 무덤인 진시황릉 옆에서 발견되었지. 진시황릉과 병마용은 무슨 관계일까?
진시황제 하면 두 가지 느낌이 동시에 들어.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군주! 그러나 역사상 최악의 폭군! 중국은 최초의 왕조 하나라가 탄생한 뒤, 상나라, 주나라가 차례로 뒤를 이었어. 주나라 때는 봉건제를 실시했어. 왕의 가족이나 친척, 공을 세운 신하들을 제후로 삼고 땅을 나누어 주어 다스리는 방식이야.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왕과 제후들 사이가 멀어졌고, 제후들은 저마다 힘을 길러 독립을 하기 시작했어. 이후 5백 년 동안 중국은 분열의 시대를 보냈지. ‘춘추전국시대’라고 부르는 이 시대의 최고 강자는 진나라였어. 결국 진나라 왕 ‘영정’이 중국을 통일하고 중국 최초의 황제, 진시황제가 되었지. 진시황제는 중앙집권적인 군현제를 실시하고 도량형과 문자를 통일했어. 이 제도들은 이후 다른 왕조에도 계승되어 2천 년 넘게 중국사에 큰 영향을 끼쳤지. 그러나 진시황제는 중국 역사상 최악의 폭군으로 불리기도 해. 내용이 마음에 안 드는 책들을 불태우고, 학자들을 말만 앞세운다며 땅에 묻기도 했어. 만리장성, 아방궁, 황릉 등 토목 공사에 수십만 명의 백성을 동원해 가혹하게 착취했지.
진시황제는 이렇게 최고의 권력을 누리면서도 한 가지가 늘 아쉬웠어. 인간이라면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것, 바로 죽음이었지. 진시황제는 자신도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너무 슬펐어. 하는 수 없이 자기가 묻힐 무덤을 만들라고 명령했지만, 한편으로는 영원히 살고 싶다는 욕망을 키워 나갔어.
“불로장생약을 구해 오라! 신선을 데려와도 좋고!”
수많은 사람들이 ‘내가 적임자’라며 진시황제에게 자금을 받아갔지만, 돌아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진시황제는 불로장생약과 신선을 찾아 순행을 떠나기로 결심했어. ‘순행’이란 군주가 자신의 영토와 백성을 직접 보기 위해 여행하는 걸 말해. 그러나 진시황제는 순행 중에 숨을 거두었고, 자신이 만든 황릉에 묻혔지.

 

진시황릉은 크기가 정말 어마어마해. 가로 세로 길이가 각각 500미터씩이나 되고, 높이도 100미터 가까이 될 정도야. 멀리서 보면 그냥 산 같아 보이지. 이집트인이 쿠푸 왕의 피라미드를 만들 때보다 8년이 더 걸렸고, 공사에 참여한 백성의 수도 여덟 배나 많았다는구나.
엄청난 시간을 들이고 수많은 백성을 동원해 만든 황릉이니, 내부의 모습은 정말 화려하지 않을까? 진시황릉은 아직 발굴하지 않아 어떤 모습인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가 없어. 그 대신 사마천이 <<사기>>라는 역사책에 적어 놓은 글이 있어 상상은 해 볼 수 있지. 
“진귀한 보물을 함께 묻었다. 천장에는 천체의 모습이, 바닥에는 중국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강과 바다도 만들었는데 수은이 물의 역할을 하며 흐른다.” 
진시황제는 자신이 죽은 뒤의 세상을 하늘과 땅, 강과 바다가 있는 실제 세상과 똑같이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아.

/자료 제공=‘세계사를 담은 도자기 이야기’(강창훈 지음ㆍ웃는돌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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