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운데가 불룩한 도자기야. 양 옆에 손잡이가 살짝 보여. 그런데 그림이 그려져 있네?
두 사람의 모습이 보여. 등받이 없는 좁은 의자에 앉아서 낮은 탁자 위에 놓인 판을 커다란 눈으로 응시하고 있어. 둘 다 오른손 손가락 끝을 판 위에 올려 두고 있는 걸 보니, 함께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 같아. 주사위 놀이를 하는 걸까? 장기를 두고 있는 것 같기도 해. 
이들은 뭐 하는 사람들일까? 힌트가 있어. 왼쪽 사람은 투구를 쓰고 있고 오른쪽 사람은 그렇지 않지만, 등 뒤에 있는 무언가의 위에 투구를 올려놓았어. 아하, 전사로구나! 전투와 전투 사이 쉬는 시간에 보드게임 삼매경에 푹 빠져 있는 것 같아. 두 사람의 왼손이 재미있어. 둘 다 창을 잡은 채로 어깨 위에 걸치고 있지. 그것도 둘씩이나 말이야. 게임을 하면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것 같아. 전령이 적의 공격 소식을 전하면 곧바로 떨쳐 일어설 태세를 갖추고 있는 거지.

▲그리스 그림 도자기
▲그리스 그림 도자기

이들은 누구일까? 왼쪽이 아킬레우스, 오른쪽이 아이아스야. 아킬레우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영웅이야. 어머니는 신, 아버지는 인간이지. 어머니는 아들이 신처럼 영원히 죽지 않기를 바랐어. 몸을 담그면 영생할 수 있다는 스틱스 강물에 아기 아킬레우스의 몸을 담갔지. 
“이제 안심이다. 내 아들은 영원히 살 거야!” 
장성한 아킬레우스는 트로이 전쟁에 참전하게 되었어. 그리스 연합군과 트로이의 전쟁이야. 아킬레우스는 그리스 연합군 소속으로 트로이 함락의 선봉장을 맡았지. 그림에서 아킬레우스와 게임을 즐기는 아이아스는 아킬레우스에 버금가는 장수였어. 그런데 불행하게도 아킬레우스는 트로이와 싸우다가 전사하고 말아. 가만? 스틱스 강물에 몸을 담갔다면서? 그런데 왜 죽었지?
어머니가 아킬레우스의 몸을 강물에 담글 때 실수한 게 화근이었어. 자기 손으로 잡은 아킬레우스의 발꿈치 부분만 물에 닿지 않았는데, 트로이군이 쏜 화살이 하필 그곳을 명중시켰던 거야. 그때부터 발꿈치 힘줄에 ‘아킬레스건’이라는 이름이 붙었지. ‘아킬레스건’은 뜻이 확장되어 어떤 사람의 가장 약한 부분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이게 됐지. 
아이아스는 아킬레우스의 시신을 수습하고 방패와 갑옷 등 유품을 챙겨 아군의 진영으로 돌아왔어. 자신이 세운 공을 내세우며 아킬레우스의 유품은 자신이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지. 그러나 그리스 연합군의 대장 오디세우스가 거부하자 아이아스는 분을 못 참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어. 이 도자기의 그림은 실제 있었던 일을 그린 것인지는 알 수 없어. 
다만, 화가가 두 사람의 각별한 인연을 떠올리며 그리지 않았을까 하고 후대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지. 

트로피는 왜 그릇 모양일까?
이 도자기는 기원전 500년경 고대 그리스인들이 만들어 사용하던 거야. 그들은 왜 그리스 신화의 내용을 도자기 표면에 그렸을까? 궁금증이 생기는데, 우선 이 도자기가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지부터 살펴보자꾸나.
고대 그리스의 도자기는 지금까지 발견된 것이 약 8만 점이나 된다고 해. 모양도 무척 다양하지. 그래서 연구자들은 모양이 비슷한 것들끼리 몇 가지로 분류하고 이름을 붙였어.

앞에서 보여 준 도자기는 ‘암포라’라고 해. 항아리 몸통이 크고 길쭉하고, 어깨 부분에 손잡이가 두 개 달린 도자기를 그렇게 불러. 주로 포도주를 담았다고 해. 고대 그리스인들의 술자리에는 이 암포라가 항상 있었을 거야.
그럼, 아킬레우스와 아이아스가 그려진 암포라를 놓고 술을 마신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이와 같이 정교한 그림이 새겨진 도자기는 아무나 사용할 수 없었어. 그림을 그리는 데 시간도 많이 걸리고 구입하려면 돈도 많이 들었겠지. 당연히 특권계층이 사용했을 것 같은데, 그들은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었을까? 신화 속 유명한 전쟁 이야기가 그려져 있는걸 보면, 전사들의 술자리에 쓰인 것 아닐까? 
술을 마시면서 이런 대화를 나누었을 것 같아.
“저번 전투 때 장군의 활약은 아킬레우스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자네가 아이아스처럼 날 잘 보좌해 준 덕분이지, 하하하!”
술이 달아오르면 열띤 토론도 벌이지 않았을까?
“적은 왜 그렇게 쉽게 무너진 걸까? 병사는 우리보다 많았는데, 대형에 문제가 있었나?” 
고대 그리스어에서 ‘술을 함께 마시다’를 ‘심포지엄(symposium)’이라고 했어. 오늘날 토론회나 좌담회 등을 열 때 ‘심포지엄’이라 부르곤 하는데, 그런 이유가 숨어 있어.
자, 그럼 전사들이 포도주를 마시며 왁자지껄 떠드는 장면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보자꾸나. 암포라에 담긴 포도주를 술잔에 따라 주거니 받거니 함께 마시는 모습 말이야. 
항아리들을 살펴볼 때 주의할 점이 하나 있어. 항아리 중에는 ‘히드리아’라고 부르는 것도 있어. 암포라와 달리 두 개의 손잡이가 수평으로 달려 있어. 수직으로 달린 손잡이도 하나 있고 말이야. 아무래도 운반하거나 액체를 따르기에 좀 더 편리하겠지? 그런데 히드리아는 주로 물을 담는 항아리였어. 히드리아는 왜 필요했을까? 중요한 이유가 있어.
사실 암포라에 담은 건 정확히 말하면 포도주 원액이야. 그대로는 너무 진해서 마실 수가 없지. 물과 섞어 마셔야 했기 때문에 히드리아가 필요했던 거야. 입구가 좀 더 넓은 ‘크라테르’에 둘을 부어 섞은 뒤 ‘퀼릭스’나 ‘스키포스’에 따라 마셨지. 
도자기를 감상할 때는 표면에 새겨진 무늬나 그림뿐 아니라 생김새도 잘 살펴보아야 해. 당시 사람들이 어떤 용도로 사용했는지 상상하다 보면, 그들의 삶 속에 직접 들어가 보는 것 같은 생생한 느낌을 가질 수 있지. 물론 정답을 모를 수도 있지만, 이런저런 상상을 해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지 않아? 
암포라는 올리브기름을 담는 데도 썼다고 해. 고대 그리스에서는 스포츠 경기 우승자에게 올리브기름을 담은 암포라를 상으로 주었어. 예를 들어, 아테네에서는 ‘판아테나이아’라는 이름의 제전이 4년마다 개최됐고, 다양한 종목의 스포츠 경기가 열렸어. 특히 전차 경주 종목 우승자에게는 올리브기름을 가득 채운 암포라를 140점이나 상으로 준 적도 있다는구나. 그리스인들에게 올리브는 ‘물로 된 금’이라 불릴 정도로 귀한 것이었기 때문이야. 태권도나 피아노 경연 대회에 나가서 트로피 받아 본 적 있어? 모양을 보면 꼭 그릇처럼 생겼는데, 왜 그런 건지 궁금하지 않았어? 고대 그리스에서 상으로 주던 암포라가 조금씩 모양이 바뀌어 지금처럼 되었다고 해. 어때? 다시 보니 좀 비슷하지 않아?

/자료 제공=‘세계사를 담은 도자기 이야기’(강창훈 지음ㆍ웃는돌고래)

저작권자 © 소년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키워드

Tags #도자기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