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 아름다운 음악을 다시 들을 수 있다면….”
1770년,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트는 시스티나 성당을 나오며 중얼거렸다. 바이올린 연주자이자, 잘츠부르크 대주교 궁정의 부악장이었던 그는 음악 신동인 아들 모차르트를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해 이탈리아로 연주 여행을 왔다. 그리고 시스티나 성당에서만 들을 수 있다는 곡, 알레그리가 작곡한 <<미제레레>>를 직접 듣게 된 것이다. 
*미제레레
성경의 시편 51편을 가사로 하는 성가. 신에게 죄를 고백한 후 용서를 비는 내용이 담겨 있으며, 가사의 첫 소절인 ‘미제레레 메이(저를 불쌍히 여기소서)’를 따서 <<미제레레>>라고 부른다. 시스티나 성당에서는 지금도 해마다 부활절 전 주간에 이 노래를 부른다.

미켈란젤로의 천장화로 화려하게 장식된 성당의 촛불이 하나씩 꺼지며 “미제레레 메이, 데우스(주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합창이 울려 퍼졌다. 어둠 속의 노래, 영혼을 울리는 하모니가 얼마나 신비롭고 아름다웠던지 마지막 촛불이 꺼지고 예배가 끝나도 레오폴트는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했다. 
*합창
소프라노, 알토 등 여러 성부를 나누어 함께 부르는 노래. 부르는 사람의 음 높이에 따라 성부를 나누어 맡는다. 여성과 남성이 함께 부르는 혼성 4부 합창이 주로 공연되는데, 혼성 4부 합창은 여성의 높은 소리와 낮은 소리(소프라노와 알토), 남성의 높은 소리와 낮은 소리(테너와 베이스)로 구성된다.


그는 *<<미제레레>>를 다시 듣고 싶었다. 하지만 이 곡은 시스티나 성당의 것으로 악보조차 구할 수 없었다. 교황이 악보를 바깥으로 절대 내보내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음악을 들으려면 1년 뒤 시스티나 성당으로 다시 오는 수밖에 없었다. <<미제레레>>는 부활절 전주의 수요일과 금요일 저녁 예배에서만 공연하니까. 
“다시 듣고 싶다고요? 여기, 제 머리 속에 악보가 있는데!”
이제 열네 살이 된 소년 모차르트는 아버지의 얘기를 듣더니,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러고 나서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펜을 들고 방금 전에 들은 악보를 오선지에 그렸다.
아버지는 악보를 받아들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미제레레>>는 합창단과 중창단이 함께 부르는 *합창으로, 합창단은 다섯 파트로, 중창단은 네 파트로 이루어져 있었다. 자그마치 아홉 개의 파트로 이루어진 합창곡인 것이다. 그러니까 이 곡을 외우려면 한꺼번에 들리는 아홉 파트의 음을 따로 구분해 낼 수 있어야 한다. 게다가 곡의 길이도 10분이 넘으니, 엄청난 양의 음을 외워야 했다. 그런데 모차르트가 적은 악보에는 이 복잡하고 긴 곡이 각 파트별로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신이 내린 아이, 모차르트. 그는 네 살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해 다섯 살 때부터 작곡을 시작하고 열 살이 되기 전에 첫 번째 교향곡을 완성했다. 아버지는 이 놀라운 재능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모차르트가 여섯 살 때부터 온 유럽을 누비며 연주 여행을 다녔다. 

카르몽텔의 (레오폴트 모차르트와 그의 아이들, 볼프강과 마리아 안나) - 모차르트는 피아노의 신동으로 불리며 어린 시절부터 가족과 함께 연주 여행을 다녔다.
카르몽텔의 (레오폴트 모차르트와 그의 아이들, 볼프강과 마리아 안나) - 모차르트는 피아노의 신동으로 불리며 어린 시절부터 가족과 함께 연주 여행을 다녔다.

 

레오폴트는 곧바로 이탈리아 귀족들에게 소문을 퍼뜨렸다. 그리고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그들 앞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보여 주기로 했다. 금지된 <<미제레레>> 악보를 감히 세상 사람들 앞에 그대로 내보이려는 것이었다.
레오폴트는 당장 시스티나 성당에서 이 곡을 합창했던 단원들을 찾아가, 모차르트가 쓴 악보가 맞는지 확인해 달라고 했다. 당시 악보 유출을 막기 위해 합창단원들은 파트별로 악보를 외워서 불렀다. 그런데 레오폴트는 그들이 외운 것과 모차르트의 악보가 똑같은지 봐 달라고, 그것도 귀족들 앞에서 모차르트가 직접 각 파트를 노래하겠노라고 제안한 것이다.
합창단원들은 이 재미있는 제안에 흔쾌히 시간을 내주겠다고 했고, 레오폴트는 쾌재를 부르며 귀족들을 끌어 모았다.
약속한 날, 모차르트는 자신이 쓴 악보를 들고 합창단원들 앞에 섰다.
“세상에, 이럴 수가…. 똑같아.”
파트가 하나씩 끝날 때마다 탄성 소리는 더욱더 커졌다. 이것이 과연 곡을 딱 한 번 듣고 악보로 옮긴 것이 맞단 말인가? 
아름다운 곡과 더불어 모차르트의 천재성도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 뒤로 모차르트는 35년의 짧은 생애를 마감하기까지 특유의 천재성을 바탕으로 <<진혼곡>>을 포함해 600여 곡의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다. <<진혼곡>>은 죽은 사람을 기리는 음악으로, 가톨릭교회에서 장례 미사 때 사용하는 곡을 말한다. <<레퀴엠(라틴어로 ‘안식’이라는 뜻)>>이라고도 한다. 베르디와 브람스 등 여러 작곡가들이 레퀴엠을 남겼는데,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합창과 기악 연주가 탄탄하게 조화된 곡으로 유명하다. 모차르트가 죽기 얼마 전에 의뢰받아 곡을 마무리 짓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으며, 현재 연주되는 모차르트의 <<진혼곡>>은 미완성 작품을 제자 쥐스마이어가 완성한 것이다.

오페라를 음악 예술로 승화시키다
35년의 짧은 생애 동안 600여 곡을 작곡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는 천재성이 돋보이는 수많은 곡을 남겼다. 이른바 ‘노래하는 듯’한 모차르트 곡의 가락은 쉽고 단순하지만, 그 단순한 아름다움은 아무나 따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모차르트는 교향곡을 비롯해 여러 장르에서 눈부신 활약을 했는데, 그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오페라’이다. 모차르트 이전의 오페라는 고대의 신과 영웅들을 다루는 엄숙한 비극이거나, 서민들을 위한 격이 떨어지는 익살스러운 희극 오페라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모차르트는 오페라를 최고의 음악 예술로 승화시켰으며, 등장인물에 따라 개성적인 곡을 작곡하는 독창성을 발휘했다. 가령 <<마술피리>>에서 밤의 여왕이 불같이 화를 내며 부르는 노래는 매우 강렬하고 사나운 반면, 천진난만한 파파게노의 노래는 어수룩하면서도 사랑스럽다.
모차르트는 열두 살 때 처음으로 오페라를 작곡하기 시작해 22편의 주옥같은 오페라를 남겼다. 그 가운데 귀족들의 위선을 우스꽝스럽게 들춰낸 <<피가로의 결혼>>과 <<돈 조반니>>, 그리고 평등한 세상을 노래한 <<마술피리>>가 3대 오페라로 손꼽힌다. 특히 모차르트는 <<피가로의 결혼>>과 <<돈 조반니>>를 통해 가벼운 시간 때우기로만 여겨지던 희극 오페라를 예술로 끌어올렸으며, 오페라는 이탈리아어로 불러야 한다는 통념을 깨고 <<마술피리>>에 독일어 가사를 붙임으로써 오페라의 지평을 넓혔다.

 

▲ 바티칸
▲ 바티칸

교황이 다스리는 나라로, 이탈리아 수도 로마에 있다. 면적이 서울의 1/100이고 인구는 1000명에 불과하지만 2000년에 이르는 가톨릭의 역사가 간직된 곳이다. 성 베드로의 무덤 위에 세워진 성 베드로 대성당과 교황이 거주해 온 바티칸 궁전, 미켈란젤로의 천장화가 그려진 시스티나 성당 등 역사적인 건축물과 예술품으로 가득해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밤의 여왕이 등장하는 장면을 묘사한 무대 디자인 스케치.

 

/자료 제공: ‘인문학이 뭐래? 알면 들리는 클래식’(햇살과나무꾼 지음ㆍ한울림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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