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안에 사람들이 꽉 들어 차 있어. 두 그룹으로 나뉘어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 왼쪽은 동양인, 오른쪽은 서양인 같은데, 눈에 띄는 두 사람이 그림의 주인공이라는 걸 알 수 있어. 오른쪽의 서양인은 왼쪽 무릎을 꿇고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고, 왼쪽의 동양인은 등을 반쯤 돌리고 담배 연기를 뿜으며 거드름을 부리고 있구나.

서양인은 영국 사신 ‘조지 매카트니’이고, 동양인은 청나라 황제 ‘건륭제’야. 1793년 조지 매카트니가 청나라의 여름 궁전 ‘열하’에 사신으로 왔을 때 두 사람이 만난 장면이야. 매카트니가 저 멀리 영국에서 청나라까지 찾아온 이유가 무얼까?
콜럼버스와 바스쿠 다 가마가 새로운 항로를 개척한 뒤, 포르투갈, 에스파냐에 이어 네덜란드와 영국도 차례로 아시아 시장에 진출했어. 그런데 교역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로워서 청나라와는 원하는 만큼 무역을 할 수가 없었지. 그래서 영국 정부는 매카트니를 청나라에 파견해서 교역량도 늘리고 교역의 자유도 넓히려 한 거야. 
매카트니 사절단은 청나라에 갈 때 많은 선물을 가져갔어. 귀한 선물을 수레 40대 분량이나 가져갔다고 해. 그림에 보면 영국 국왕의 마차 미니어처, 군함, 열기구의 모형도 보이고, 배드민턴 라켓이나 희귀 동물도 보여. 영국도 중국 못지않게 발전한 나라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겠지. 그러나 그림에 보이는 표정으로도 짐작하겠지만 건륭제의 태도는 단호했어. 
“지대물박(地大物博)! 중국은 땅이 넓고 생산되지 않는 물자가 없는 나라다!”
결국 매카트니는 임무 달성에 실패하고 영국으로 돌아와야 했지. 그런데 매카트니가 귀국해서 쓴 보고서를 보면, 사절단이 건륭제에게 줄 선물로 가져간 물건 중에 도자기도 일곱 점이 포함되어 있었어. 다시 그림을 보면, 매카트니가 앞에 늘어놓은 선물들 중에, 망처럼 보이는 것 바로 왼쪽에 있는 것이 자기가 아닐까 싶어. 확실하진 않지만 말이야.
오랫동안 중국 도자기를 흠모했고 늘 수입해서 사용해 왔던 영국이 도자기의 종주국 황제에게 도자기를 선물했다니 놀랍지 않아? 자국이 생산한 도자기에 대해 자신 있다는 의미였을 것 같아. 그럼, 당시 영국의 도자기 산업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살펴보자. 

귀족 마케팅으로 성공한 웨지우드 도자기
1709년, 독일의 마이센에서 유럽 최초로 자기 생산에 성공했어. 그 비법이 금세 유럽 각지로 퍼져 나갔지. 이제 유럽의 도공들은 ‘델프트 도기’보다는 자기 생산에 집중하기 시작했어. 영국에서는 스태퍼드셔 주가 자기 생산의 중심지가 되었어. 자기 생산에 좋은 점토와 연료로 쓰는 석탄이 풍부했기 때문이야. 이곳에는 가문 대대로 도공이었던 웨지우드 가문이 살고 있었어. 1730년 조지아라는 아이가 태어났는데, 아홉 살 때부터 이미 훌륭한 도공이 될 자질을 보이기 시작했다는구나. 하지만 천연두를 앓은 뒤 무릎이 약해져 페달을 밟을 수 없게 되었고, 그때부터 도자기 제작 대신 디자인 연구에 몰두했지. 1759년 도자기 공장을 설립한 뒤 큰돈을 벌었고 사회적으로도 훌륭한 명성을 쌓았어. 
조지아 웨지우드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건 바로 ‘혁신, 또 혁신!’이었어. 좋은 흙을 찾고, 유약을 개발하는 등 도자기 제조 기술을 끊임없이 업그레이드시켰어. 그뿐 아니라 생산, 유통, 마케팅 등 경영 기법도 언제나 새로운 것을 추구했지. 
우선 생산 분야부터 살펴보자. 예전에는 도자기를 하나 만들 때, 그 과정 전체를 한 사람의 장인이 도맡았어. 그러나 웨지우드는 한 사람이 하는 일을 장소를 기준으로 몇 단계로 나누었어. 도자기를 빚는 방, 칠을 하는 방, 가마가 있는 방, 구워진 도자기가 잘 구워졌는지 점검하는 곳, 생산물 목록을 작성하는 곳, 보관 창고…… 이런 식으로 말이야. 각 장소에 배치된 일꾼들은 각자 맡은 일만 하면 되는 거야. 한 기록에 따르면 웨지우드의 공장에서 278명이 일했는데, 6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한 분야의 일만 했다고 해. 게다가 당시는 산업혁명의 시대야. 도자기 공장에 증기기관이 도입되면서 작업 속도가 더 빨라졌지. 이렇게 모든 과정을 분업으로 함으로써, 도자기의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었어. 
웨지우드는 마케팅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어. 현재 우리가 흔히 접하는 상품 안내서나 무료 배송, 환불 보증, 셀프 서비스 등등은 250년 전 웨지우드가 처음 시작한 거야. 
웨지우드 회사 내에는 직영 매장이 설치되어 있었어. 고객들이 직접 찾아와 도자기를 둘러보기도 하고 비교적 싼 값에 구매할 수 있었지. 새로운 제품이 출시되면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손님이 몰렸다는구나. 새로 출시된 아이폰을 사려고 매장을 빙 둘러 줄 서는 모습을 상상하면 될 것 같아.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귀족 마케팅’이야. 웨지우드가 도자기 공장을 설립하고 가장 먼저 집중한 분야는 ‘크림웨어’라는 크림색 도기였어. 하루는 영국 국왕 조지 3세의 왕비 ‘샬롯’이 웨지우드에게 크림웨어로 만든 식기 세트를 주문했어. 웨지우드는 약속한 날짜에 맞춰 샬롯에게 식기 세트를 보냈지. 그런데 웨지우드는 이 과정에서 왕비에게 한 가지 요청했어. “이 식기 세트에 ‘퀸즈웨어(왕비의 도자기)’라는 이름을 쓸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샬롯의 승인을 얻는 데 성공! 웨지우드가 이 식기 세트의 이름을 ‘퀸즈웨어’로 홍보하자, 귀족이나 부유층의 부인들 사이에서 불티나게 팔려 나갔어. 이 그릇을 쓰는 동안은 왕후가 된 느낌이었을 것 같아. 그러니 너도나도 이 식기 세트를 사지 않았을까?
웨지우드는 러시아의 여황제 예카테리나 2세로부터도 식기 세트 주문을 받은 적이 있어. 그런데 이번에는 디너 세트가 모두 50개이고, 낱개로 하면 거의 1천 점에 이르는 엄청난 양이었지. 당시 유럽인들은 영국식 정원을 좋아했다고 해. 그래서 예카테리나 2세는 도자기에 영국의 정원이나 건축물을 그려 달라고 요구했어. 그것도 모두 다른 그림으로 말이야. 하지만 웨지우드는 여황제의 주문대로 수량과 그림, 날짜까지 정확히 지켜서 납품을 했다고 해. 예카테리나 2세가 주문한 크림웨어는 도기였고, 그림을 그리는 데 너무 많은 시간과 노동력이 들었기 때문에 이윤을 별로 남기지 못했어. 하지만 이번에도 ‘퀸즈웨어’의 사례처럼 웨지우드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지. 
웨지우드는 귀족 마케팅으로 쌓은 브랜드 이미지로 해외 시장도 공격했어. 이때도 새로운 마케팅을 시도했는데, 해외의 왕실이나 귀족들에 도자기 상품을 일단 무작정 보내는 거야. 이런 
편지와 함께 말이지.
“살펴보시고 결정해 주십시오. 사실 거면 돈을 보내 주시고, 사지 않으실 거면 도자기를 돌려보내 주십시오.”
이렇게 하면 왕실이나 귀족들은 설령 마음에 안 들어도 돌려주면 체면을 구기게 될까 봐 구입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거야. 이런 걸 ‘자존심 마케팅’이라고 해야 할까?

/자료 제공=‘세계사를 담은 도자기 이야기’(강창훈 지음ㆍ웃는돌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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