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쭉한 병 두 개가 서 있어. 흰 바탕에 푸른색으로 그림을 그렸구나. 둘이 쌍둥이처럼 똑같은 그림이야. 병의 불룩한 부분에 그려진 용, 보이지? 두 개의 병을 함께 살펴보면, 비늘 달린 몸통에 기다란 다리가 두 개이고, 날카로운 발톱이 네 개씩 달려 있어. 
용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아. 사람들이 만들어 낸 상상의 동물이지. 어떤 사람은 용이 뱀의 몸통과 낙타의 머리에 거북이의 눈, 물고기의 비늘, 매의 발톱을 지녔다고도 해. 어때, 그런 것 같아? 아무튼 여러 동물을 합쳐 만들었으니, 용은 최고의 동물이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그래서 사람들은 용을 황제나 왕에 비유하곤 했어. 왕이 앉는 자리는 용상, 왕이 입는 옷은 용포라고 하잖아? 그래서인지 수염을 휘날리며 입을 벌리고 있는 용의 표정이 위풍당당해 보이는구나. S자 모양의 용 위아래로 꼬불꼬불 꼬리 달린 무언가가 떠다니고 있어. 이건 구름이야. 용이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는 모습을 표현했다는 걸 알 수 있지. 병의 입 부분과 아랫부분, 그리고 중간의 허리띠처럼 보이는 곳에는 식물 무늬들이 그려져 있어. 
그런데 이 병에는 용 말고도 동물이 하나 더 있어. 상상의 동물이 아니라 진짜 동물이! 어디에 있는지 숨은 동물 찾기를 해 볼까? 잘 모르겠다면 힌트를 하나 줄게. 이 동물은 그림으로 그려진 것이 아니라 병의 일부야. 정답은 코끼리! 코끼리의 긴 코를 이용해서 손잡이 두 개를 만들어 놓았어. 참 기발하지? 
이 병은 용도가 무엇일까? 키가 60센티미터 넘으니까 물병으로 쓰기에는 너무 큰 것 같고, 무언가를 꽂아 놓으면 좋을 것 같아. 그래, 이건 꽃병이야. 

 

이 꽃병이 전시되어 있는 곳은 영국 런던에 있는 퍼시벌 데이비드 박물관이야. 퍼시벌 데이비드는 이 병을 소장한 사람의 이름이야. 그래서 ‘데이비드 꽃병’이라고 부르지. 영국이 이렇게 멋진 도자기를 보유하고 있는 걸 보니, 중국 못지않은 도자기 강국이었던 걸까?
왼쪽 꽃병의 목 부분을 자세히 보면, 무언가 글씨가 쓰여 있는 것 같아. 어? 그런데 영어가 아니라 한문이네! 전문가의 해석을 빌려 보면, 이런 내용이야. 
“1351년 4월 신주로 옥산현의 ‘장원진’이 가족의 번영과 자녀의 평안을 위해 이 꽃병 한 쌍을 ‘도관’에 바칩니다.” 
1351년이면 몽골족이 세운 원나라가 중국을 지배하던 때야. 신주로 옥산현은 중국 지명이고, 장원진은 사람 이름, 도관은 도교의 사원. 그러니까 이 꽃병 한 쌍은 영국이 아니라 중국에서 만들어진 거야. 퍼시벌 데이비드가 1929년 중국에서 구입해 영국으로 가져왔고, 자신이 세운 박물관에 전시했지. 이 백자는 흰색 자기에 푸른색 그림을 그린 거라 ‘청화백자’라고 해.

 

백자를 좋아한 몽골인들
잠시 서긍 이야기를 떠올려볼까? 서긍은 고려청자를 송나라 최고의 청자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고 칭찬한 적이 있었지. 하지만 당시 송나라는 청자뿐 아니라 백자도 생산하고 있었어. 제작 기술도 예술성 면에서도 이미 최고 수준에 올라와 있었지. 그런데 송나라에게 불행한 일이 닥쳤어.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의 침입을 받아 대륙의 절반을 내주고 남쪽으로 후퇴해야 했던 거야. 이때부터 나라 이름을 ‘남송’이라고 불러. 하지만 이건 불행의 시작일 뿐이었어. 몽골족이 칭기즈 칸이라는 걸출한 영웅을 앞세워 몽골 초원을 통일하더니 아시아 전역으로 뻗어 나가기 시작한 거야. 칭기즈 칸이 죽은 뒤에도 그의 계승자들은 정복 전쟁을 계속했고 서쪽으로는 유럽, 남쪽으로는 중국을 위협했지. 결국 몽골은 남송을 멸망시켜 중국 전체를 차지했어. 몽골인들은 중국이 이룩한 찬란한 문명에 입을 다물지 못했어. 특히 백자를 좋아했어. 지금까지 남아 있는 그 시대의 백자 중에 ‘추부’라는 글자가 찍힌 것이 있는데, ‘추밀원’이라는 행정조직을 뜻해. 도공이 백자를 생산한 뒤 추밀원에 보내기 전에 도장으로 찍은 거지. 이걸 통해 몽골 조정에서 백자가 사용되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어. 
한편, 몽골은 수십 년 동안 정복 전쟁을 벌여 유라시아 대륙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대제국을 건설했어. 유라시아 대륙이 하나의 영토로 통합되면서 지역들 사이의 왕래가 전보다 훨씬 자유로워진 거야. 무역하기에 좋은 여건이 갖추어지자, 서아시아의 무슬림 상인들이 활발하게 중국을 왕래하며 무역에 종사했어. 그러면서 다양한 중국 상품을 거래했는데, 도자기도 중요한 품목 중 하나였지. 사실 서아시아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중국 자기를 사용하고 있었어. 이슬람교에서는 금이나 은으로 만든 접시에 음식을 담아 먹는 것을 사치스럽다는 이유로 금지했기 때문에, 부유층은 그걸 대체하기 위해 중국 자기를 사용했지. 중국 자기도 사치스럽긴 마찬가지이지만, 어쨌든! 
그런데 몽골제국 시대에 중국에 온 무슬림 상인들은 예전과 다른 새로운 자기, 즉 ‘백자’가 유행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어. 물론 그전에도 백자가 있었지만 주로 푸른 기운이 감도는 백자였는데, 당시 유행한 건 색이 완전히 하얀 백자였던 거야. 몽골 조정이 도공들에게 순백자를 만들게 했기 때문에 생긴 변화였지.
무슬림 상인들은 이 순백자를 무척 좋아했지만,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어. 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거든. “그동안은 중국인들이 만들어 주는 대로 수입했지만, 이제부턴 우리가 원하는 걸 따로 주문하자!” 그들의 아이디어는 무엇이었을까? 어떤 자기를 원했던 걸까?

/자료 제공=‘세계사를 담은 도자기 이야기’(강창훈 지음ㆍ웃는돌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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