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에 사람들이 타고 있어. 좁은 등에 바글바글, 만원 버스 같구나. 낙타는 힘든 걸 억지로 참고 있는 걸까? 목을 뺀 채 그저 하늘만 쳐다보고 있어. 혹이 하나인 단봉낙타일까? 혹이 두 개인 쌍봉낙타일까? 단봉낙타면 볼록한 혹에 저렇게 많은 사람이 균형을 잡고 앉아 있을 수 없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쌍봉낙타? 사람들이 앉은 곳을 자세히 살펴보면 몇 가지 장치가 있어. 색과 무늬가 화려한 담요 한 장이 덮여 있는 건 한눈에도 보이지? 그런데 낙타 등 앞뒤로 트인 곳으로 담요가 하나 더 드러나 보여. 밑에 한 장이 더 깔려 있구나. 하지만 담요 두 장만으로는 사람들이 낙타의 두 혹 위에 균형을 이루고 앉아 있기가 쉽지 않을 텐데? 그러고 보니 왼쪽에 앉아 있는 사람의 오른쪽 다리 밑으로 두툼한 나무판 끝이 살짝 보이는구나. 두 혹 위에 놓여 자리를 평평하게 만들고 사람들이 떨어지지 않게 균형을 잡아 주는 거지. 도대체 뭐하는 사람들이기에 이렇게 좁은 공간에 오글오글 모여 있을까? 옆에서 보면 네 명 정도가 보이지만, 한 바퀴 쭉 돌려보면 낙타 등에 타고 있는 사람이 모두 다섯이야. 왼쪽에 앉은 사람이 들고 있는 건 기타랑 닮았어. 기타보다 몸체는 긴 타원형이고 자루는 짧아. ‘비파’라는 악
기야. 줄이 네 개면 ‘사현비파’이고 다섯 개면 ‘오현비파’인데, 이건 줄까지는 새겨 넣지 않았구나. 
다섯 명 중 유일하게 우뚝 서 있는 사람이 하나 있어. 입을 크게 벌리고, 오른팔을 안쪽으로 접어 배에 힘을 모으고 있는 모습이 마치 가수 같구나. 다른 세 사람도 저마다 악기를 하나씩 들고 양쪽에 나누어 앉아 있는데, 반주를 하고 있는 것 같아. 하나하나 구색을 잘 갖춘 모습이 마치 밴드 같아. 낙타 등에 올라탄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은 마치 오늘날 밴드가 콘서트를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해. 낙타 등에 타고 있는 악사들을 형상화한 이것은 흙을 구워 만든 도자기야. 중국 당나라 때인 700년경에 만들어진 도기지. 
이 도기, 색상이 무척 화려하지? 이렇게 인물이나 동물 모습을 한 도기들이 처음 발견된 건 지금부터 약 백 년 전의 일이야. 중국 당나라 황실이나 귀족의 무덤에서 나왔지. 이때 발견된 것들을 보면 대체로 호박색(황색), 녹색, 흰색 등 세 가지 유약이 발라져 있었어. 그래서 학자들은 ‘당나라의 세 가지 색 도기’라는 의미로 ‘당삼채’라 이름 지었지.

ⓒ 상해인민미술출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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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삼채 부인상 ⓒ 상해인민미술출판사
당삼채 부인상 ⓒ 상해인민미술출판사

 

이름에서 색상이 다채로운 화려한 도자기라는 느낌이 확 나는구나. 당삼채는 이후에도 계속 출토되었어. 그런데 위의 세 가지 색뿐 아니라 청색이나 홍색 유약을 바른 것도 새로 발견되었어. 그럼, ‘당오채’라고 이름을 바꾸어야 하나? 그렇게 하지는 않았어. 그냥 계속해서 ‘당삼채’라고 불렀지. 중국에서 숫자 3은 그냥 ‘셋’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많다’ 또는 ‘다양하다’는 의미도 갖고 있으니까 굳이 이름을 바꿀 필요가 없는 거지.
그런데 이쯤에서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어. 당삼채 도기가 만들어진 건 중국 당나라 때인 700년경이야. 자기를 발명하고 이미 오백 년이나 지난 뒤였지. 그런데 왜 여태 도기를 쓰고 있는 걸까? 중국인은 후한시대에 자기를 발명한 뒤 계속해서 자기를 발전시켰고 자기의 시대를 열어 갔어. 그렇지만 자기가 등장했다고 해서 도기가 사라진 건 아니야. 질이 훨씬 뛰어난 자기가 있는데 사람들은 왜 굳이 도기를 계속 사용한 걸까? 당삼채 도기, 도대체 왜 만든 거지?

저승에서도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다!
방금 전에 살펴본 건 수많은 당삼채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야. 지금까지 발견된 당삼채들을 보면 그 모습이 무척 다양해. 당삼채는 크게 인물상, 동물상, 생활 도구 등으로 나눌 수 있어. 그중에서 우리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건 아무래도 인물상이지. 인물상은 당삼채에서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소재야. 문관상이나 무관상처럼 관료의 모습을 나타낸 것도 있고, 황실 가족이나 귀족 가문의 여인을 묘사한 것도 있어. 동물상 중에는 주로 말이나 낙타를 형상화한 것이 많아. 물론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사람이 말이나 낙타를 타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도 적지 않지. 당삼채 도기는 어디에 쓰였을까? 당삼채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어. 하나는 무덤에서만 출토된다는 거야. 일상용품이 아니라 부장용품이었다는 거지. 또 하나는 당나라 전기에 약 백 년 동안 유행했다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거야. 
중국은 전한과 후한, 삼국시대, 남북조시대를 차례로 거쳤어. 삼백 년 넘는 전쟁과 분열의 시대를 수나라가 통일했지만 금세 망하고 당나라가 그 뒤를 이었지. 이때부터 중국은 백여 년 동안 전성기를 맞이했어. 당나라는 밖으로는 유목민족들을 제압하면서 영토를 넓혔고, 안으로는 평화와 안정을 누렸지. 당연히 경제적인 번영도 함께 맞이했고 말이야. 
삶이 풍요로워지자 사람들은 사치를 즐기기 시작했어. 예전 같으면 필요가 없었을 물품을 사는 데 돈을 썼지. 특히 황실과 귀족, 관료들 사이에 사치 풍조가 심했어. 이들은 더할 나위 없이 호화로운 생활을 즐겼지. 그러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죽어 저승에 가서도 이승의 부귀영화를 계속 누리고 싶다!” 
가족이 죽으면 무덤을 성대하게 만들었어. 금ㆍ은ㆍ동ㆍ귀금속으로 만든 다채로운 부장품들을 무덤에 함께 넣었지. 그런데 귀금속을 너무 많이 쓰다 보니 어느새 값이 올라가기 시작했고, 금과 은으로 만든 물건의 가격이 폭등했어. 당나라 때는 경제 발전으로 동전을 많이 발행해야 했는데, 그러다 보니 동마저도 부족해져 가격이 급등했어. 값비싼 귀금속을 대신할 무언가가 필요했는데, 그 대용품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당삼채였던 거야. 당삼채는 도기이기 때문에 자기보다 질이 떨어지고 가격이 낮아. 대신에 무척 화려하지! 다양한 색상에 생동감 넘치는 인물상과 동물상들! 금ㆍ은ㆍ동 등 귀금속으로 만든 물건이나 자기에 비하면 비용이 적게 들면서도 시각적 효과는 확실하지.

/자료 제공=‘세계사를 담은 도자기 이야기’(강창훈 지음ㆍ웃는돌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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