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으로 세상의 길을 열다

아주 오래전 옛 사람들은 필요한 물건을 어떻게 샀을까? 어떤 방법과 수단으로 거래가 이뤄졌으며, 어떤 경로를 거쳐 물건을 손에 넣을 수 있었을까? 이 코너는 이런 궁금증에서부터 시작해. 그럼 이제부터 고대에서 현대까지 세계사를 이끈 중요한 상품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볼까?
 

인류 최고의 상품 
 염전(鹽田)에 가 본 친구들이 있니? 염전을 우리말로 소금밭이라고 해. 이곳에 가면 소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볼 수 있어. 바닷물이 햇빛과 바람을 만나서 수분이 증발하면 짠맛이 나는 흰색 결정체들이 생기는데 이것이 바로 소금이야. 소금은 바다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 땅에 매장된 지층 가운데 암염층에서 광물의 형태로 채굴해 얻을 수도 있어. 인간이 먹는 유일한 암석이지. 화학적으로는 염화 나트륨(NaCl)이라고 불러. 그 결정이 아름다워 ‘소금꽃’이라고도 해. 
 소금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중요한 물질이야. 문명의 탄생도 소금의 존재 여부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 인류 최초의 문명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여러 도시 국가들도 소금 무역과 밀 농사 등을 통해 성장해 나갔으니까. 기원전 1만 년 전, 인류 최초의 도시 ‘예리코(Jericho)’는 사해(死海) 근처에 터를 잡았어. 사해는 강물이 들어오는 곳만 있고 나가는 곳이 없었지. 건조한 기후 때문에 물의 증발이 심해 염분 함유량이 많아 생명체가 거의 살 수 없었어.

▲ 아라비아반도 서북쪽에 위치한 사해

하지만 예리코 사람들에게 이곳은 최적의 장소였어. 인류에게 필요한 소금을 얻을 수 있었고, 교통이 편리해 상인들의 중간 집결지로 최고였지.
 

물류 혁명을 이룬 로마인의 소금 길 
 작은 도시 국가였던 로마도 소금 상인들이 모여서 만든 나라야. 페니키아 시대 로마 부근에는 유럽 최초의 인공 해안 염전이 만들어졌어. 내륙이나 사막을 거쳐 운반된 소금은 운송비나 세금이 비쌌어. 기원전 640년, 로마인들은 대규모 염전소를 건설하고 하천을 통해 소금을 운반하는 방법을 택했지. 품질 좋고 가격이 저렴한 소금은 로마를 금세 소금 유통의 중심지로 만들었어. 이른바 로마의 ‘소금 길’이 열린 거야. 초기 로마 시대에 소금은 화폐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어. 관리나 군인들에게 주는 돈을 소금으로 지불한 거야. 봉급을 뜻하는 영어 ‘샐러리(Salary)’는 소금을 뜻하는 ‘살라리움(Salarium)’이라는 말에서 유래했어. 소금은 교역 품목으로 그 가치가 점점 높아졌어. 로마는 힘을 앞세워 소금이 나는 지역들을 정복해 갔지.모든 길은 로마로 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소금 때문이라는 게 신기하지? 

네덜란드의 운명을 바꾼 염장법
 네덜란드의 수도가 어딘지 아니? 맞아, 암스테르담이야. 특별한 지하자원이 없는 이곳이 중계 무역으로 유명해진 이유는 청어라는 물고기 때문이야. 14세기에서 15세기 무렵, 청어는 중세 유럽인들에게 단백질 공급원으로 인기가 있었어. 하지만 바다에서 갓 잡은 생선은 쉽게 상하고 말았지. 

14세기 중엽, 네덜란드 어민인 빌렘 벤켈소어가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칼을 개발했어. 또 생선을 잡아 배에서 바로 내장을 손질한 뒤 소금에 절여 통에 보관하는 염장법도 생각해 냈지. 염장법을 이용하면 육지에 돌아와 다시 한번 더 절이면 1년 넘게 보관할 수 있었어. 네덜란드는 이 칼 덕분에 청어 절임으로 유명해져 엄청난 부를 누리게 되었어.

베네치아의 탄생과 소금 독점 

▲ 세계적인 관광 도시이자 수상 도시인 베네치아
▲ 세계적인 관광 도시이자 수상 도시인 베네치아

이탈리아에는 유명한 3대 관광지가 있어. 바로 로마와 피렌체, 베네치아야. 그중 베네치아는 ‘물의 도시’라고 불릴 만큼 섬과 섬으로 연결한 수로가 발달해 있지. 해상 무역의 중요한 거점이기도 해. 베네치아는 452년 훈족의 침입으로 생겨난 도시야. 베네치아에 온 사람들은 물고기와 소금으로 무역을 시작했어. 7세기 이후 베네치아는 해수면이 낮아지면서 소금을 만드는 최적의 조건이 되었어. 바닷물을 염전으로 끌어와 바람과 햇빛으로 수분만 증발시킨 천일염을 만들 수 있었지. 소금은 베네치아의 독점 무역품이었어.
 

간디의 소금 행진
비폭력주의자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딩동댕. 바로 인도의 위대한 성인 마하트마 간디야. 간디와 소금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소금은 간디가 행한 비폭력 무저항 운동의 상징이었어.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는 소금세를 엄청나게 내야 했는데, 소금은 정치적ㆍ경제적으로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으니 영국 입장에서는 인도를 통제할 좋은 수단이었던 거야.

▲ 마하트마 간디
▲ 마하트마 간디

그런데 참 이상하지. 영국은 소금세를 제일 먼저 폐지한 국가였어. 1825년에 영국이 소금세를 폐지한 이유는 18세기 중엽에 시작된 산업 혁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산업 혁명은 화학 혁명이라고 말할 정도로 화학 물질이 중요하게 부각되었어. 소금이 단순한 보존 첨가물이나 조미료로서의 기능이 아닌 산업을 일으키는 핵심 원료가 된 거야. 소금이 비싸면 공장에서 많은 물건을 싸게 만들지 못하게 되니까 영국 정부는 소금세를 폐지했던 거지. 하지만 1923년, 영국은 식민지였던 인도의 소금세를 두 배로 올렸어. 인도는 기온이 높은 나라였기 때문에 체내 염분 
손실을 방지하기 위해 소금이 많이 필요했지. 공짜로 먹던 소금을 세금까지 내라고 하니 인도 사람들은 화가 나 폭동을 일으켰어. 1930년, 간디는 소금 행진을 시작했어. 세금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비폭력 행진이었지. 3주 동안 400킬로미터를 걸어 바닷가에 도착한 간디는 소금을 한 줌 집어 들었어. 함께한 지지자 수천 명이 그 광경을 지켜보았지. 간디의 소금 행진은 인도의 독립 운동을 비폭력으로 이끄는 데 큰 역할을 했어. 
 

 

/‘상품 속 세계사’(심중수 글ㆍ이현정 그림ㆍ봄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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