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문화의 상징 ‘신라 금관, 권력과 위신’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 내년 2월까지 연장
약 104년 만에 신라 금관 6개를 모두 모은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 ‘신라 금관, 권력과 위신’이 12월 14일에서 내년 2월까지 연장됐다. 이달 초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개관 80주년을 맞아 선보인 전시에 관람객이 몰리자 기간을 늘린 것이다. 여기서 잠깐. 금관은 누가 왜 썼을까? 1500년 전 잠에서 깨어난 신라 황금문화의 상징인 금관 이야기를 들려준다.
△신라 금관 특별전
이번 전시는 신라 대표 문화유산인 금관과 금 허리띠 등 총 20점을 모았다. 중심은 금관이다. 1921년 9월 경주 노서동의 한 무덤에서 우연히 발견된 금관총 금관부터 금령총, 서봉총, 천마총, 황남대총, 교동 출토 금관까지 6점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섰다. 금관이 처음 발견된 이후 약 104년 만이다. 전시에서는 새의 날개가 펼쳐진 듯한 금제 관식(관을 꾸미는 장식), 모관(머리 위에 쓰는 모자 형태의 관), 금 허리띠도 볼 수 있다. 박물관은 회차당 150명씩 평일 기준 하루 2550명으로 관람 인원을 제한하고 있다. 온라인 예약(회당 70명) 시스템도 도입했다.
△‘신라를 담은 타임캡슐’
신라 금관 6점 중 가장 먼저 존재가 알려진 건 1921년 발견된 금관총 금관이다. 머리띠 위에 3개의 나뭇가지 모양과 2개의 사슴뿔 모양 세움 장식을 더한 형태다. 높이 27.7㎝에 무게는 692g. 신라 금관이 처음 발견돼 금관총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신라 금관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교동 금관은 현존하는 신라 금관 중 가장 오래된 5세기에 만든 것으로 보여진다. 머리띠에 특별한 장식이 없고, 다른 금관과 달리 끝에 고리 모양이 달려 있다. 금령총 금관은 이름 그대로 금방울(금령) 한 쌍과 함께 발견됐다. 높이 27㎝, 무게 356.4g이다. 규모가 작고 곡옥(굽은옥)이 없는 형태다. 서봉총 금관은 장식된 ‘봉황’에서 이름을 따 서봉총이라고 부른다. 세움 장식이 3단 구조로 구성되어 있으며, 장식적 요소가 가장 화려하다. 천마총 금관은 가장 크고 찬란한 왕의 관이다. 말 그림이 새겨진 ‘천마도’와 출토됐다. 6점 중 가장 크고 무겁다. 머리띠 길이는 63㎝, 무게는 1.3㎏. 반달 모양으로 다듬은 장식용 옥 58개가 달려있어 화려하다.
황남대총 금관은 천마총 금관과 같은 해인 1973년 발굴됐다. 왕비의 관으로 알려져 있으며, 신라 금관 중 가장 정교하고 균형 잡힌 형태를 지녔다. 곡옥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 게 특징이다.
△금관의 주인
서기 382년 신라는 왕의 호칭을 신라의 최고 지배자를 뜻하는‘마립간’으로 바꿨다. 5세기부터 6세기 초반 황금 문화가 정점에 달했던 시기에 만들어진 무덤에서는 금관을 비롯한 금빛 유물이 나왔다. 다만, 신라의 왕이 금관을 실제 썼는지는 아직 풀리지 않은 부분이다. 실제 각 무덤에서 발굴됐을 당시 모습을 보면 고깔 모양으로 휘어져 있다. 망자의 얼굴을 덮는 용도, 즉‘데스마스크’(death mask)로 보는 견해가 그것이다. 반면에 서봉총 금관 내부에서 발견된 둥근 모자에서 보듯이 제사 때나 축하연 등 특정한 상황에서는 실제 착용됐을 가능성이 있다.
왕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제작된 금관은 왕실의 사람들도 착용했다. 황남대총과 서봉총 금관은 왕비, 교동 금관의 주인은 남자어린이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