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선생님이 준비한 것은 일본을 대표하는 생선초밥이야. 일본말로는 스시, 우리나라에서는 초밥이라고 하지.
초밥이 일본의 대표 음식이 된 사연을 지금부터 시작할게. 고대 일본인들의 고민은 생선을 오래 보관하는 방법이었어. 당시에는 냉장 시설이 없었거든. 다양한 방법으로 생선 저장 방법을 찾다가 동남아시아의 저장법을 알게 됐어. 동남아시아에서는 생선에 소금을 뿌려 쌀밥과 버무린 다음 나무통이나 항아리에 저장했거든.

일본 사람들은 생선을 빨리 상하게 하는 내장을 제거했어. 그런 다음 깨끗이 씻어 소금을 뿌리고 쌀밥에 버무려 항아리에 담고 입구를 꽉 막았어. 공기가 통하지 못하도록 입구를 무거운 돌로 눌러 놓기도 했지. 공기와의 접촉을 피해야 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 그러면 자연적으로 숙성된 생선을 먹을 수 있었지. 이렇게 만든 생선을 ‘나레즈시’라고 하는데 뭉개진 밥은 걷어 내고 생선만 먹는 것이었어. 세월이 흘러 16세기 즈음에 일본 사람들은 생선의 숙성 시간을  더 줄이고 새콤한 맛을 살리려 밥을 식초와 소금에 버무렸어. 그리고 주먹밥 크기로 만든 밥 위에 생선을 적당한 크기로 올렸지. 이것을 ‘니기리즈시’라고 하는데, 에도에서만 먹을 수 있는 생선으로 만든 것이라 ‘에도마에즈시’라고 하기도 해.


[ 더 알아볼까? ]
일본의 항구가 된 구룡포
경상북도 포항시 구룡포의 근대 문화 역사 거리는 일제 강점기 때의 모습이 남아 있는 곳이야. 일본인들이 구룡포에 정착한 이유는 고등어 때문이야. 일본은 구룡포를 갖기 위해 조선 정부에 구룡포항를 열도록 압박했어. 큰 배가 정박할 곳이 생기자 일본 어부들이 구룡포로 몰려들어 자신들이 거처할 집을 지었어. 일본의 전통가옥과 음식점, 제과점, 그리고 학교가 들어서며 번화하기 시작했지.

일본인들은 하루에 고등어를 2~3천 마리씩 잡아 올렸어. 그러다 보니 구룡포에 고등어 씨가 마를 정도였지. 구룡포에는 우리의 아픈 역사를 볼 수 있는 계단이 있어. 구룡포 공원으로 이어지는 계단 양쪽에 120개의 기둥이 있어. 기둥에는 근처 충혼각을 세우는 데 기여한 한국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는데, 뒷면에는 시멘트로 덧칠이 되어 있어. 구룡포항을 조성하는 데 참여한 일본인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야. 광복 후 일본인 이름을 시멘트로 덮어 버리고 돌기둥을 돌려 세운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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