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많은 소년, 손병희의 사위가 되다
서울의 어느 집에 아이들이 잔뜩 몰려들었어. 이미 밤인데 서로 머리를 밀치면서 좁은 마당으로 밀려드는 거야. 지나가던 어른들도 궁금해서 빠끔 들여다보았어.
“환등기 보려고요. 돈 내야 돼요.” 
아이들이 마당에 가득 차자 불빛 한 줄기가 담벼락 쪽을 비추더니 커다란 사진이 나타났어. 화면은 미국의 높다란 빌딩 숲을 보여 주었어. 그러자 한 아이가 화면 옆에서 설명을 시작했어.

 

“이 나라는 하늘에 닿을 듯이 높은 집들이 솟아서 구름이 창문 옆으로 둥실둥실 떠가고, 새들이 날아가다가 창문으로 들어와 지지배배 인사를 한답니다.”
아이는 무성 영화의 변사처럼 화면을 재미있게 설명했어. 뛰어난 동화 구연가가 될 소질을 가진 이 아이가 바로 방정환이야. 그의 재주를 알아본 어느 미술가가 환등기를 선물로 주었는데 그걸로 공연을 한 거야.
방정환은 1899년 11월에 서울에서 태어났어. 아주 어릴 땐 부자여서 남부러운 것 모르고 자랐지. 방정환은 맘씨도 좋아서 언제나 친구들을 몰고 다니면서 호떡이나 엿을 척척 사 주었어. 
그런데 9살 무렵 집안의 사업이 망해서 끼니를 제대로 못 먹을 정도가 되고 말았지 뭐야. 그때부터 친척 집에 양식을 꾸러 다니는 게 어린 방정환의 중요한 일이었대.
하지만 방정환은 기죽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며 지냈어. 그는 열 살 때 ‘소년 입지회’에서 활동했는데, 아이들 토론 모임이었어. 서너 살씩 많은 친구들을 주도하는 이는 가장 어린 방정환이었어. 그 정도로 방정환은 말하기를 좋아했고, 또 뛰어난 이야기꾼이었어.
방정환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권유로 선린 상업 학교에 입학했어. 장사를 배워서 장차 집안을 일으키라는 뜻이었지. 
하지만 방정환은 그 무렵부터 글쓰기에 관심이 생겼어. 최남선이 발행하던 <<소년>> 등과 같은 잡지를 밤을 새며 읽었어. 그러면서 작가가 될 꿈도 키우고, 잡지를 직접 만들고 싶다는 희망도 품었지. 그러던 방정환은 학교를 그만두고 취직해서 돈을 벌기로 결심했어. 이후 총독부의 토지 조사국에 사자생으로 취직했어. 정식 직원은 아니고 문서를 베끼는 아르바이트 같은 거였지. 방정환은 천도교 일도 열심히 했어. 주말이면 천도교 교당으로 나가서 교리를 공부하고 청년회 모임을 주도했어. 이런 방정환을 유심히 본 사람이 권병덕이란 천도교의 높은 어른이었어. 그가 방정환을 천도교 교주 손병희의 사윗감으로 추천한 거야. 평소 권병덕을 굳게 믿던 손병희는 고개를 끄덕였어.
“안 그래도 용화의 배필을 알아보려던 참이니 그 청년을 한번 데리고 와 보세요.”
이리하여 방정환은 영문도 모른 채 손병희의 집으로 갔어. 
“고개를 들고 내 눈을 똑바로 보게.”
손병희는 방정환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어. 몸은 비쩍 말랐고 옷차림도 초라했지만 눈동자만큼은 별처럼 빛났지. 이후 손병희는 천도교 신도인 방정환의 아버지를 만나 혼인을 약속받았어. 손병희는 방정환의 태도와 눈빛에서 꿈과 열정을 보았던 거야.
1917년 4월, 열아홉 살 방정환은 손용화와 혼인을 하고는 처가에서 살았어. 가난해서 학교도 못 다니던 방정환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지. 그 후 방정환은 활발한 활동을 펼쳤어. 1918년부터 보성 전문학교에 다니면서 천도교 내에 경성 청년 구락부라는 모임을 만들어 독립운동을 시작했지. 그 이듬해 3ㆍ 1 운동이 일어났는데, 그때 방정환은 무얼 했을까?
3ㆍ1 운동은 천도교가 없었다면 일으키기 어려웠을 거야. 천도교가 참여 인원도 가장 많았고, 자금도 많이 댔고, 보성사라는 천도교의 인쇄소에서 선언서를 인쇄했거든. 
보성사는 만세 운동 소식을 전하기 위해 3월 1일에 <조선독립신문>을 발행했어. 방정환은 이 신문 발행에 참여했고, 신문과 선언서를 나누어 주는 일도 맡았어.
<조선독립신문>은 창간호를 발행하자마자 사장이 잡혀가고, 보성사는 불태워지고 말았어. 더 이상 신문을 발행할 수 없게 되자 방정환은 친한 학생들과 동료들에게 말했어.
“인쇄기는 없지만 손으로 등사기를 밀어서라도 신문을 계속 만들자.”

 

학생들은 기꺼이 기사를 써 왔고, 방정환과 동료들은 밤새 신문을 만들어 뿌렸어. 그런 어느 날, 냄새를 맡은 일본 경찰이 집을 에워쌌어.
그러자 방정환은 즉시 등사기와 남은 신문들을 보따리에 싸서는 마당 뒤 우물에 던져 넣었어. 일본 경찰이 눈이 벌게져서 찾아다니던 방정환을 가만둘 리 없잖아.
“방정환은 손병희의 사위이니 틀림없이 독립 선언서나 신문 발행과 관계가 깊을 것이다. 고문을 해서라도 자백을 받아 내라.”
경찰은 일주일 동안이나 방정환을 고문하고 협박했지. 하지만 방정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증거가 될 만한 건 우물 속에 처넣었으니까 시치미를 뚝 뗐지. 결국 자백도 못 받고 증거도 없으니 풀어 줄 수밖에 없었어. 하지만 그 이후로 항상 경찰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어 감시하기 시작했어.

/자료 제공= ‘빛난다! 한국사 인물 100-⑩ 일제 강점기: 빼앗긴 나라를 되찾아라!’(박윤규 글ㆍ최미란 그림ㆍ시공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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