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토현의 승리와 전주 화약
동학군 소식에 조정은 발칵 뒤집혔어.
“이들은 농민이 아니라 역적이오. 다른 지방으로 번지기 전에 토벌해야 하오!”
조정에서는 전라도 관찰사 김문현에게 동학군을 토벌하라는 명을 내렸어. 김문현은 관군 250명에다 돈을 주고 끌어들인 보부상 1000여 명을 이끌고 토벌에 나섰어.
4월 6일, 토벌대는 황토현 고개에서 잔치를 벌였어. 전쟁에 나서기 전 사기를 높이려는 작전이었지. 전봉준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밤에 기습을 했어. 한바탕 잔치 끝에 곯아떨어져 있던 토벌대는 갈팡질팡이었지. 순식간에 토벌대를 무찌른 동학군은 정읍, 흥덕, 고창을 잇따라 점령했어.
점점 불어난 동학군은 성난 해일처럼 전주성을 향해 진격했어. 그곳은 초토사 홍계훈이 이끄는 중앙군이 대포까지 갖추고 지키고 있었거든. 하지만 그는 나서서 싸우지 못하고 청나라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보고서를 올렸어. 
“쾅!”
전주 장터 건너편 용머리 고개에서 천지를 뒤흔드는 대포 소리가 울렸어. 그것을 신호로 사방에서 총소리와 함성이 터졌어. 동학군이 공격을 개시한 거야. 장터에 장꾼으로 변장해 숨어들었던 수천 명이 들고일어났어. 갑작스런 공격에 놀란 홍계훈과 관군들은 싸울 엄두도 못 내고 내빼고 말았지. 동학군은 큰 싸움 없이 전라도의 도읍지 전주성을 점령한 거야.
화들짝 놀란 조정은 홍계훈에게 동학군과 화의할 것을 명했어. 
홍계훈은 다급히 전주로 달려와 전봉준과 회담을 가졌어. 전봉준은 다음과 같이 요구했어.

노비 문서는 불태워 버릴 것. 세금을 무리하게 걷지 않을 것. 탐관오리를 쫓아낼 것. 관리 채용은 공정하게 하고 인재를 등용할 것. 토지는 고루 나누어 경작하게 할 것…….

“이런 일을 시행하려면 자치 기관인 집강소를 만들고, 그것을 감독할 대도소가 있어야 하오. 이렇게 해 준다면 군사를 물리겠소.”
다급해진 홍계훈은 모든 제의를 다 받아들였어. 이리하여 ‘전주 화약’이 이루어졌어. 혁명군이나 반란군이 조정과 합의를 이룬 건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야. 전라도 53개 읍에 집강소를 만들기로 한 동학군은 관군에게 전주성을 내주었어. 그리고 당당하게 각자 고향으로 돌아갔어.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민중의 승리였지.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전주 화약이 이루어지자 조선 조정은 청나라와 일본에 군대를 철수하라고 요구했어. 청나라는 일본과 같은 날 군사를 물리겠다고 했으나, 일본은 조선이 개혁하는 걸 봐서 물러나겠다고 버텼어. 일본이 조선을 삼키겠다는 욕심을 드러낸 셈이었고, 청나라도 물러서지 않았어. 청과 일본이 먹잇감을 두고 다투는 꼴이 되었지.
선수를 친 건 일본이었어. 일본군이 아산 근처에 머물러 있던 청나라 해군을 공격한 거야. 전투는 일본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어. 이후 일본은 경복궁까지 점령하고는 조선을 자기 마음대로 주무르기 시작했어. 그러자 전봉준은 다시 동학군을 일으켰어. 1894년 9월, 전라도 삼례로 동학군이 모여들었어. 전국에서 들고일어난 동학군의 숫자는 20만이나 되었으니 나라의 군대보다도 많았지. 일본은 조선 관군과 연합군을 만들어 대항했어. 전봉준은 주력 부대 1만을 이끌고 공주로 진격했어. 그러자 일본군은 우금치 고개 높은 곳에서 사정없이 대포를 쏘아 댔어. 
동학군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공격했어. 동료들의 시체를 넘고 산비탈을 달렸지만 전세는 점점 불리해졌어. 전봉준은 결국 후퇴 명령을 내렸어. 용맹만 앞세운 동학군의 시신이 우금치 고개 비탈에 가득 쌓였지. 비록 전투에는 졌으나 전봉준은 절망하지 않았어. 전라도 순창에 숨은 그는 다시 군사를 일으킬 계획을 짰지. 그러던 중 옛 부하가 배신하여 관가에 고자질하는 바람에 붙잡히고 말았단다.

 

일본군은 전봉준을 묶어서 서울로 데리고 갔어.
전봉준은 일본 영사관에 넘겨져, 소속 재판소에서 재판을 받았어. 일본 영사가 심문을 하자 전봉준을 두 눈을 번득이며 꾸짖었어. 하나 마나 한 재판은 사형을 선고하는 것으로 끝났어. 
1895년 3월, 결국 전봉준은 손화중, 최경선, 김덕명 같은 동지들과 함께 사형을 받았어. 
탐관오리들이 백성을 괴롭히고, 제국주의 나라들이 조선을 삼키려 할 때 떨쳐 일어난 녹두 장군 전봉준. 그는 꺼져 가는 조선의 마지막 등불이었고, 겨레의 굳센 지킴이였어. 영웅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긴 백성들은 애달픈 노래로 슬픔을 달랬지. 오늘날까지 전봉준은 이 노래와 더불어 많은 문학 작품의 주인공으로 살아 있단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 장수 울고 간다.

/자료 제공= ‘빛난다! 한국사 인물 100-⑨ 조선 후기: 선비들, 새 세상을 꿈꾸다’(박윤규 글ㆍ백두리 그림ㆍ시공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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