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으로 가득 찬 차가운 콜라 잔을 비우자 시원한 감탄사가 저절로 새어 나왔다. 시연이의 손에는 반쯤 남은 불고기 버거가 들려 있었다. 
“이거거든! 이걸 한번이라도 맛보면 용돈을 모을 수가 없다니까.”
아저씨 같은 시연이의 모습에 선희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선희와 반대로 서윤이의 표정은 심상치 않았다. 시연이는 선희에게 살짝 눈짓을 보냈다. 자기 말에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둘이 눈치를 보고 있을 때 마침 화장실에 갔다 온 희지가 서윤이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왜? 무슨 일이라도 있어?”
그러자 그 말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서윤이가 부리나케 입을 열었다.
“간신히 잊고 있었는데 시연이가 용돈 이야기를 하니까 다시 생각났어. 얘들아, 내 말 좀 들어 봐. 우리 집에 언니랑 동생 있는 거 알지? 우리는 용돈이 한 사람당 3만 원이야. 그런데 우리 집엔 특이한 제도가 있어. 3만 원을 다 쓴 뒤에도 정말로 더 쓸 곳이 있으면 1만 원을 더 받을 수 있거든. 그 대신 다음 달에는 1만 원을 덜 받는 조건으로 말이야.” 
듣고 있던 아이들이 정말 좋은 방식이라는 듯이 무릎을 치며 서윤이의 말을 받았다. 
“와! 그거 좋다. 나도 정말 급할 때는 다음 달 용돈에서 미리 쓸 수 있으면 좋겠다!”
친구들의 감탄에도 서윤이는 여전히 억울한 표정이었다. 

 

“맞아. 우리가 살 게 얼마나 많아. 그래도 나는 먹고 싶은 것도 참고, 영화관에 가고 싶은 것도 참았어. 4만 원을 쓰면 좋지만 다음 달에 2만 원으로 견디는 건 너무 힘드니까 말이야.” 
이야기를 하던 서윤이가 답답한지 사이다를 마신 후 다시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아이들은 다음 내용이 궁금한지 감자튀김을 먹던 것도 잊고 계속 서윤이의 입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내 동생은 달라. 먹고 싶은 건 먹고, 사고 싶은 게 있으면 사. 당연히 용돈이 금방 떨어지지. 문제는 그다음부터야. 그 녀석이 다음 달 용돈에서 1만 원을 당겨서 받았어. 그러면 다음 달에는 2만 원을 받아야 하는데, 다시 그다음 달 1만 원을 또 당겨 쓰는 거야.”
“뭐야! 그럼 네 동생은 너랑 언니보다 1만 원을 더 쓰는 거잖아.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시연이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니까. 당연히 엄마도 더 이상 못 참고 동생한테 용돈을 안 준다고 했어. 그랬더니 자기는 2만 원으로는 절대로 못 살겠다면서 막무가내로 울고불고 난리를 친 거야. 결국 엄마랑 아빠랑 상의하더니 이전에 쓴 거는 없던 일로 한다는 거 있지?”
사정을 들은 아이들이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서윤이에게 맞장구를 쳤다. 
“내가 다 화가 난다. 너는 먹고 싶은 것도, 사고 싶은 것도 참았는데 동생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책임도 안 진 거잖아.”
“내 말이 바로 그거야! 그래서 앞으로 언니랑 나도 엄마한테 용돈 다 쓴 다음에 더 달라고 조르기로 했어.”
이후로도 아이들은 서윤이 동생 이야기를 하며 한참을 더 수다를 떨었다. 

아이들과 헤어진 후 시연이는 삼촌 집으로 향했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 삼촌이 새로 나온 게임을 시켜 준다고 했기 때문이다. 집에는 시연이보다 먼저 삼촌을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삼촌과 함께 게임 스토리를 쓰던 삼촌 친구였다. 두 사람은 이제 막 이야기를 시작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네 말은 정부가 가상 화폐나 부동산을 사려고 영혼까지 끌어모아 빚을 진 청년층의 빚을 줄여 줘야 한다는 이야기지?”
“맞아. 투자를 하다 빚을 잔뜩 지는 바람에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주변에 너무 많아. 내 친구만 해도 빚을 갚느라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라 하더라고.”
“그걸 왜 나라가 책임져야 하는 건데?”
삼촌의 표정이 조금 서늘해지자 친구는 놀랐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며 반문했다. 
“너 뉴스도 안 봐? 가상 화폐에 투자하다 빚을 진 사람이 생활이 어려워지자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했잖아. 그런 사람들을 돕는 게 나라의 역할 아니야?”
“네 말대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게 나라의 역할은 맞아. 그런데 그 이유가 코로나19 사태처럼 외부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책임이라면 무조건 도와주는 건 아니라고 봐.”
“왜 안 되는데?”
이번에는 친구가 되물었다. 
“개인이 투자 실패로 진 빚을 나라에서 책임져 주면 형평성에 어긋나잖아.”
삼촌의 목소리가 조금씩 높아지자 친구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흥분하지 말라는 뜻으로 두 손을 위에서 아래로 흔들었다. 

 

“그러니까 나도 모든 빚을 없애 달라는 게 아니야. 나라에서 빚을 조금 줄여 주든가 이자를 면제해 주는 방법도 생각해 보자는 거지. 그래야 그 사람들도 돈을 벌고 모아서 다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지.”
“그렇게 원칙을 없애면 나라의 경제 질서가 무너져 더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을 수도 있어. 예전에 마구잡이로 빚진 기업들을 도와주다 나라 전체가 흔들렸던 거 몰라? 그래서 IMF(세계 무역 안정을 목적으로 설립한 국제 금융 기구) 외환 위기가 온 거잖아.”
“나도 알아. 하지만 그건 기업이고 이번에는 개인이야. 기업과 개인은 규모가 달라.”
“네 뜻은 알겠어. 그래도 지금은 조카가 와 있으니까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더 하자고.”
“그럼 나도 네 조카랑 같이 게임해도 되는 거지?”

 

오늘 주제는 빚을 내서 부동산이나 주식, 가상 화폐 등에 투자하다 생활이 어려워질 정도로 손해를 본 청년들의 빚을 나라가 대신 부담해 주는 것이 옳은가의 문제야. 최근 금융 당국은 
‘금융 부문 민생 안정 과제 추진 현황 및 계획’을 발표해 청년과 서민의 투자 실패가 사회적 낙인이 되지 않도록 ‘청년 특례 채무 조정 제도’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단다. 이에 찬반 논란이 거세게 일었어. 찬성 측에서는 투자 실패로 빚을 갚을 수 없는 청년들의 빠른 재기를 위해, 정부가 이 사람들의 빚을 줄여 주거나 책임을 면제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해. 
하지만 그렇게 되면 빚을 내지 않거나 빚이 있더라도 성실히 갚은 사람들에게 불공평하다는 반론이 거센 상황이란다. 최근 빚 때문에 벌어진 비극적인 사건들에서 보듯이 지나치게 많은 빚은 빚을 진 사람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불행하게 만들어. 그렇다고 해서 나라에서 개인의 빚을 부담하게 되면 빚을 지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역차별이 될 뿐 아니라 경제 질서가 무너질 수 있는 것도 사실이야. 앞으로 의견을 잘 조정하여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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