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명의 생명을 앗아간 기후 재난에서 살아남은 소녀가 있어요. 필리핀의 에코 히어로 마리넬 수묵 우발도랍니다. 그녀는 자신이 겪은 일을 바탕으로 기후 위기는 우리 생각보다 아주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어요.

반가워! 나는 필리핀에 사는 마리넬 수묵 우발도라고 해. 내가 열여섯 살이었을 때 슈퍼 태풍 하이옌이 필리핀을 초토화시킨 적이 있어. 하룻밤 사이에 6000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지. 나는 운 좋게 살아남은 뒤로, 그때의 경험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어. 사람들이 기후 위기를 막는 데 참여하길 바라며 그 심각성을 알리고 있지. 


최악의 태풍, 하이옌이 찾아오다
2013년 11월, 필리핀에 역대 최악의 태풍이 불어닥쳤어. 시속 200km가 넘는 강풍이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휘몰아치고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폭우가 쏟아졌지. 내가 사는 작은 어촌 마을도 무사하지 못했어. 하이옌이라고 불리는 이 태풍은 마을을 휩쓸고 다니면서 닥치는 대로 파괴했거든. 우리 집은 떠밀려 가고 학교는 무너졌지. 이런 아수라장 속에서 나는 소중한 친구마저 잃고 말았단다. 태풍이 잦아들었을 때도 위험한 상황은 계속되었어. 먹을 것이 없어서 물에 떠다니는 것을 보이는 대로 건져 먹고, 폐허에서 비를 맞으며 잠을 청해야 했지. 전기와 인터넷이 끊겨서 다른 사람에게 연락을 못 하는 건 물론이고 말이야. 나는 이때 모든 것을 잃는다는 게 무엇인지 생생하게 느꼈단다.
 

하이옌이 슈퍼 태풍이라고?
필리핀은 평소에도 태풍이 잦은 나라야. 그래서 하이옌이 예보되었을 때 심각하게 여긴 사람은 많지 않았지. 하지만 하이옌은 지금까지 겪은 태풍과는 차원이 달랐어. 태풍이 불어닥쳤을 때, 이렇게 무서운 바람은 처음이라며 모두들 공포에 떨었지. 실제로 하이옌을 관측해 보니, 1분 평균 최대 풍속이 무려 초속 87m나 되는 슈퍼 태풍이었단다. 

2013년 태풍 하이옌의 피해자는 사망자 6009명, 실종자 1779명으로 최종 집계됐다. 이후 세계 각지에서 구호 기금과 물자를 지원하는 등 피해 복구를 도왔다.
2013년 태풍 하이옌의 피해자는 사망자 6009명, 실종자 1779명으로 최종 집계됐다. 이후 세계 각지에서 구호 기금과 물자를 지원하는 등 피해 복구를 도왔다.
▲ 2003년에 우리나라를 강타하며 역대 우리나라 태풍의 순간 최대 풍속(1분 평균 초속 75m)을 갱신한 ‘매미’. 재산 피해 규모만 4조 원이 넘는다.
▲ 2003년에 우리나라를 강타하며 역대 우리나라 태풍의 순간 최대 풍속(1분 평균 초속 75m)을 갱신한 ‘매미’. 재산 피해 규모만 4조 원이 넘는다.

 

기후 위기를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해
슈퍼 태풍 하이옌을 겪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어. 바로 화석 연료가 슈퍼 태풍을 일으키는 원인 중 하나라는 거야. 화석 연료를 태우면 이산화탄소 같은 온실가스가 발생해. 온실가스는 지구에서 빠져나가는 열을 막아서 바다를 뜨겁게 데우지. 이때 뜨거워진 바다가 더 많은 수증기를 내뿜으면서 태풍을 강하게 만든단다.

 

하이옌 같은 슈퍼 태풍은 이렇게 탄생한 거야. 결국 슈퍼 태풍 역시 기후 위기 때문에 일어난 재난인 거지. 나는 이 사실을 깨닫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 누군가는 기후 위기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재난 생존자들과 함께 필리핀 인권 위원회에 화석 연료를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는 기업을 조사해 달라고 탄원서를 제출했어. 그리고 2019년, 필리핀 인권 위원회는 ‘화석 연료 산업의 47대 가해 기업 리스트’를 밝혀냈단다. 4년 동안 힘겹게 싸워서 얻은 결과였지. 이는 국가 인권 기관으로서 최초로 기후 변화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었어.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 되다
하이옌이 휩쓸고 지나간 뒤 약 2년, 낯선 사람들이 나를 찾아왔어. 나탈리 슈바이거 작가와 그의 동생 크리스토프 슈바이거 감독이었지. 두 사람은 슈퍼 태풍을 소재로 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준비 중이라고 했어. 그러면서 나에게 깜짝 놀랄 만한 제안을 했단다. 내가 주인공으로 출연해 주길 바란다는 거야. 나는 기후 위기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 후 3개월 동안 필리핀과 프랑스 파리를 오가며 영화를 찍었어. 프랑스 배우 마리옹 코티야르도 함께 출연했지. 나와 마리옹 코티야르는 영화를 통해 하이옌의 피해 상황과 기후 위기에 맞서는 필리핀 사람들의 노력을 전했단다. 이렇게 완성된 영화의 제목은 <소녀와 태풍>이야. 

 

내가 행동하는 이유
나는 스물다섯 살이 된 지금까지도 환경을 지키는 일을 활발하게 하고 있어. ‘청소년 리더 환경 행동 연합’이라는 환경 단체를 이끌며, 국제 앰네스티ㆍ그린피스ㆍ플랜 인터내셔널 등의 국제기구와 함께 적극적으로 기후 위기를 알리고 있지. 2015년 파리에서 열린 COP21(유엔 기후 변화 협약 당사국 총회)과 2019년 마드리드에서 열린 COP25에도 참석해 전 세계의 지도자들 앞에서 연설도 했단다.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한 행동에 나서 달라고 말이지. 내가 이렇게 쉼 없이 행동하는 이유는 단 하나야. 누구도 내가 겪은 일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거든. 기후 위기가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위협하는지 알리고 싶어. 언젠가 내 삶을 돌아보게 되는 순간이 오면, ‘사람들과 지구를 위해 정말 중요한 일을 했다.’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말이야. 

▲작년 10월 31일 영국 글래스고에서 개최된 COP26에서 알록샤르마 의장이 연설을 하고있다.
▲작년 10월 31일 영국 글래스고에서 개최된 COP26에서 알록샤르마 의장이 연설을 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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