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녕 대군, 형들의 양보로 왕이 되다 
역사란 우연 같지만 지나고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경우가 많아. 태종은 참 무자비한 권력자 같지? 고려의 충신 정몽주를 죽였고, 이복동생과 조선의 설계자인 정도전을 죽였잖아. 그리고 왕이 되었거든. 매우 잔인한 것 같지만, 태종은 왕권을 강하게 하여 나라를 안정시키겠다는 철학과 소신이 있었던 거야. 어느 나라든지 건국 초기엔 그런 권력 다툼이 많았거든. 
만일 태종이 그렇게 왕권을 다져 놓지 않았다면 과연 세종이 훌륭한 임금이 될 수 있었을까? 또 세종이 왕이 되지 못했다면 오늘날 우리가 한글을 사용할 수 있을까?
세종 대왕의 이름은 이도야. 태종 이방원의 셋째로 어머니는 원경 왕후 민씨란다. 조선이 개국한 지 6년째인 1397년에 태어났으니 한양에서 났겠지. 자(성인이 된 후 본명 대신 쓰는 이름)는 원정이고, 이방원이 왕이 된 후에는 충녕 대군이 되었어. 
충녕 대군은 어려서부터 공부에 미쳤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책 읽기를 좋아했어. 책 읽기에 너무 빠져 지내니 건강을 잃을까 봐 태종이 책을 모조리 치워 버릴 정도였지. 그런데도 용케 병풍 틈에 끼어 있던 책을 찾아내 달달 외도록 읽었대. 아무래도 정치보다는 학자에 어울리는 품성이었지. 
충녕 대군은 셋째라서 임금이 될 가능성도 별로 없었어. 위로 장남인 양녕 대군과 둘째인 효령 대군이 있었거든. 그런 충녕 대군이 왕이 된 데는 재미난 이야기가 전해 온단다.
태종은 애초에 당연히 장남인 양녕 대군을 세자로 세웠어. 양녕 대군은 배포가 크고 용감하고 활도 잘 쏘았어. 붓글씨도 매우 잘 써서 명필이란 칭찬을 들을 정도였지. 그런데 자유롭게 놀기를 좋아했던 양녕 대군은 답답한 궁궐 생활이 썩 만족스럽지 않았어. 게다가 자라면서 보니 셋째인 충녕 대군의 학문과 인품이 워낙 뛰어나거든. 충녕 대군은 언제나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고, 궁금한 것은 이치를 따져 물었어. 생각도 깊고 마음도 따뜻하여 아랫사람을 잘 살피고 윗사람에게 예의도 잘 지키는 거야. 양녕 대군이 보기에도 자신보다 훨씬 나아 보였지. 
이런 차에 양녕 대군이 마음을 굳히는 일이 생겼어. 어느 날 양녕 대군이 우연히 부모님의 대화를 엿듣게 된 거야.

 

“충녕의 학문이 날로 깊어지니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태종의 말에 원경 왕후가 대꾸했지.
“학문이 깊어지는데 어찌 걱정을 하십니까?”
“학문뿐만 아니라 인품 또한 어질어 성군의 자질이 보이는데, 그 학문과 인품을 백성에게 베풀 길이 없으니 어찌 안타깝지 않겠소.”
이 말을 들은 양녕 대군은 깊은 고민에 빠졌어. 자신과 아우 중에 누가 왕이 되는 것이 백성에게 이로울까 생각했지. 양녕 대군은 고민 끝에 세자 자리를 내던지기로 작정했어. 
하지만 그건 제 맘대로 되는 일이 아니거든. 그래서 양녕 대군은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어.
“멍멍! 크르르, 컹컹!”
어느 날 스승이 공부를 가르치러 오자 양녕 대군은 별안간 개 짖는 소리를 냈어. 처음에는 장난인 줄만 알았는데, 네 발로 기면서 스승을 물기까지 하는 거야. 뿐만 아니라 공부도 안 하고 활쏘기와 사냥을 더욱 즐기기 시작했어. 또 걸핏하면 궁궐에서 빠져나가 술독에 빠져 살았지. 아버지 태종이 불러서 야단을 치고 혼을 내도 소용이 없었어. 
시간이 좀 지나면 괜찮겠거니 하고 기다렸지만, 양녕 대군의 행동은 점점 더 거칠어졌어. 신하들 입에서 세자를 바꾸자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지. 
양녕 대군이 그럴수록 둘째 효령 대군은 더욱 공부를 열심히 하고 행동을 조심했어. 그런 어느 날, 양녕 대군이 밤늦도록 공부하는 효령 대군을 찾아와 버럭 화를 냈어. 효령 대군이 놀라 쳐다보자 양녕 대군은 책상을 걷어차 버렸지.
“왜 이러십니까, 형님?”
효령 대군이 뚱한 표정으로 따지자 양녕 대군이 말했어.
“네가 그런다고 세자가 될 거 같으냐?”
“아니 그게 아니라, 저는 그저…….”
양녕 대군이 두 눈을 부릅뜨고 효령 대군을 쳐다보았어.
“너는 진정 내가 미친 짓거리를 하고 다니는 속내를 모른단 말이냐?”
“무슨 말씀인지…….”
“충녕에게 성군의 덕이 있음을 모르느냔 말이다!”
그때서야 효령 대군은 양녕 대군의 진심을 알고는 무릎을 꿇었어.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저도 형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양녕 대군이 충녕 대군을 왕으로 세우기 위해 일부러 미치광이처럼 산다는 걸 알아챈 거야. 그에 효령 대군도 손발을 맞추고자 불교 공부를 하고 승려처럼 생활하기 시작했어.
양녕 대군의 이상한 행동이 계속되자, 보다 못한 신하들이 새로운 세자를 세울 것을 재촉했어. 몇 차례 거절하던 태종은 못 이기는 척 발표했어.
“충녕은 천성이 총명하고 학문도 좋아하여 아무리 모진 추위나 더위에도 밤새도록 글을 읽는다. 또 문제가 있을 때마다 제안하는 것이 이치에 꼭 맞았다. 큰 나라 사신을 접대할 때도 풍채며 몸가짐이 예의에 맞으므로 장차 큰 자리를 맡길 만하니 충녕 대군을 세자로 삼는다.”
그 두 달 후인 1418년 8월, 충녕 대군 이도가 왕이 되니 바로 세종이란다. 
역사를 살펴보면 권력을 두고 다툼을 벌이는 형제는 무척 많아. 하지만 이렇게 형들이 아우를 위해 임금 자리를 양보한 경우는 찾기 힘들어. 그것은 세종의 학문과 덕이 높았던 까닭이기도 하지만, 형제의 우애가 정말 깊었던 거지. 우리 겨레 모두가 존경하는 큰 스승 세종은 이런 아름다운 양보와 형제의 우애 덕분에 탄생하게 된 거란다.

/자료 제공= ‘빛난다! 한국사 인물 100-⑦ 조선 전기: 문화가 강한 나라를 만들어라!’(박윤규 글ㆍ순미 그림ㆍ시공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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