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얼 담을까?

한 줌 쥘 만한 물품을 담는 것 
지금 입고 있는 옷을 살펴봐! 손이나 물건을 넣을 수 있는 주머니가 바지에도 점퍼에도 있지? 가방처럼 따로 들고 다니도록 만든 주머니도 있어. 큰 물건을 담는 자루 같은 것도 있고. 
주머니는 그리 크지 않은 물건을 담아 다니는 모든 것을 뜻해. 이렇게 쓰임새도 이름도 잘 아는 ‘주머니’라는 이름에 담긴 뜻은 무엇일까? 보통 주머니라는 말은 ‘줌+어니’로 이루어졌다고들 해. ‘줌’은 ‘한 줌’,‘두 줌’처럼 수량을 나타내는 말 뒤에 쓰이는 말이야. 한 손으로 움켜쥘 수 있는 양을 뜻하지. ‘쥐다’라는 말에서 비롯된 명사라는 주장이 있는데, 그렇다면 ‘주머니’는 ‘한 줌, 두 줌 쥘 만한 물품을 담는 것’이라는 뜻인 거지. 

 

‘줌’이 ‘줍다’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도 있어. ‘주머니’가 소리와 뜻이 닮은 만주 말 ‘줌망기’에서 온 이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어. ‘줌망기’는 작은 주머니라는 뜻이거든. 하지만 그냥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겠지? 예전에는 ‘주머니’를 ‘줌치’라고 부르기도 했대. ‘줌치’도 ‘줌’과 ‘-치’가 합쳐진 이름이야. ‘-치’는 원래 물고기 이름에 많이 붙지만, ‘줌치’의 ‘-치’는 ‘중간치, 날림치, 당년치, 버림치(못 쓰게 되어서 버려진 물건)’의 ‘치’처럼 일정한 크기를 가진 물건을 가리킬 때 쓰는 ‘치’야. 전라남도에서는 ‘주머니’와 ‘줌치’의 ‘줌’이 같아서 두 이름이 합쳐진 ‘주먼치’라는 사투리도 생겼어.

별별 주머니
주머니의 종류는 참 여러 가지야. 넓게 보면 우리가 쓰는 지갑이나 가방도 모두 주머니라고 할 수 있거든. 주머니가 달린 옷에 따라, 위치에 따라, 만든 재료에 따라, 담긴 물건에 따라 주머니의 이름이 얼마나 많은지 살펴보자.
주머니가 달린 옷에 따라 양복주머니, 달린 위치에 따라 안주머니, 겉주머니, 속주머니, 앞주머니, 뒷주머니가 있어. 만든 재료에 따라 그물주머니, 고무주머니, 베주머니, 가죽 주머니, 비단 주머니 따위도 있고, 주머니에 담긴 물건에 따라 모래주머니, 신(발)주머니, 연장주머니, 흙주머니, 얼음주머니 따위도 있지.
또 주머니에 꼭 물건만 넣는 건 아니야. 고생주머니, 꾀주머니, 복주머니, 심술주머니, 이야깃주머니, 웃음주머니, 인정주머니, 근심주머니도 있지. 동물들의 신체 기관 중에는 공기주머니, 눈물주머니, 모이주머니, 먹물주머니, 울음주머니도 있어. 주머니에는 참 별별 것을 다 넣지? 하기야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도깨비도 종종 파란 주머니, 빨간 주머니를 사람에게 주곤 하잖아. 그래도 주머니에 가장 많이 넣는 것은 아마도 돈일 거야. ‘주머니가 가볍다.’,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다.’, ‘주머니가 넉넉하다.’ 같은 말을 보면 알 수 있지.

 

‘오랑캐 주머니’라서 ‘호(胡)주머니’
주머니 이름 중에 ‘호주머니’란 말이 있어. 호주머니는 옷에 헝겊을 달거나 덧대어 돈이나 작은 물건을 담도록 한 주머니야. 지금은 거의 모든 옷에 호주머니가 달려 있지만, 원래 우리나라 옷에는 호주머니가 없었어. 요새 나오는 한복에는 주머니가 달려 있기도 하지만 말이야. 옷에 따라 손을 넣을 수 있도록 천을 덧대기는 했지만 물건을 담는 주머니는 없었지. 
우리 조상들은 옷에 주머니를 달지 않고 따로 만들어 들고 다녔어. 오늘날 가방이나 지갑처럼 말이야. 또 끈으로 허리춤에 묶어 매기도 했지. 그것을 ‘두루주머니’라고 해.
그런데 우리와 달리 중국 사람들은 옷에 주머니를 꿰매서 다녔어. 중국 사람들이 쓰던 주머니가 바로 ‘호주머니’야. 호주머니는 ‘호’와 ‘주머니’가 합쳐진 말인데, 그렇다면 호’는 무엇을 뜻하는 걸까?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한족과 친했고 만주족하고는 친하지 않았나 봐. 이 만주족을 깔보는 뜻으로 ‘오랑캐 호(胡)’ 자를 붙이곤 했어. 그래서 만주족 물건이나 음식 같은 것들에는 ‘호’ 자가 붙은 이름이 많아.
옛날 만주족 옷에는 주머니가 많이 달려 있었어. 그 사람들은 넓은 벌판에서 말을 타고 양과 염소 따위를 기르며 살았거든. 또한 사냥과 싸움을 좋아해서 여러 작은 도구를 담을 주머니가 많이 필요했던 거지. 그러니까 ‘호주머니’는 만주족이 입는 옷에 붙은 주머니를 뜻하는 말이었어.
우리나라는 개화기 때부터 호주머니를 널리 쓰게 되었고, 서양 사람들이 드나들고 양복이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옷에 주머니를 달아 쓰게 된 거야.

 

/자료 제공= ‘왜 이런 이름이 생겼을까? 사물’(박영산 글ㆍ김윤정 그림ㆍ기린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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