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인성에서 적장을 사살하다
고려의 항복을 받은 살리타는 고려에 다루가치라는 몽골 관리 72명을 남겨 두고 돌아갔어. 다루가치들은 온갖 간섭을 하면서 고려를 몽골의 속국으로 만들 준비를 했지. 최씨 무신 정권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어. 몽골에 약속한 공물도 보내지 않았고, 다루가치들은 죽이거나 쫓아 버렸어. 그리고 수도를 강화도로 옮기고는 다음 침략에 대비했어. 
1232년, 살리타는 분통을 터뜨리며 다시 쳐들어왔어. 몽골군은 순식간에 개경까지 쳐들어왔지만, 개경은 비어 있었어. 살리타는 강화도에 사신을 보내 고려 조정에게 개경으로 돌아오라고 요구했지만 고려 조정은 무시해 버렸어. 결국 살리타는 고려 국토를 짓밟아 고려 조정이 스스로 나오게 하려는 전략을 세웠지. 몽골군은 남쪽으로 내려와 남경 등을 함락한 뒤 처인성(오늘날의 용인)에 이르렀어. 살리타는 500명의 별동대를 이끌고 처인성을 공격했어. 처인성에는 피난민들과 고려의 패잔병들과 천민들이 몽골군을 피해 모여 있었거든. 
처인성의 지도자는 김윤후였어.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지. 그저 머리 깎고 수도하던 백현원이란 절의 승려였다고 해. 몽골군이 쳐들어오자 제자들을 데리고 절에서 나와서 처인성으로 들어온 거야. 김윤후는 성안의 작은 암자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베풀며 백성들을 보살폈어. 새벽에 일어나 예불을 드리고, 낮에는 패잔병들과 의병들을 모아서 훈련을 시켰어. 그리고 밤이면 혼자 오래도록 활쏘기를 연습했지. 그런 어느 날 김윤후에게 활 솜씨를 발휘할 기회가 왔어. 살리타가 부하 10여 명만 데리고 성을 정탐하러 온 거야. 살리타가 처인성 동문 근처 숲에 이르렀을 때였어.
“핑!”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더불어 살리타의 비명이 울려 퍼졌어. 화살 하나가 정확하게 살리타의 심장에 박힌 거야. 살리타는 말에서 떨어져 고꾸라지고 말았지.
“쳐라!”
숲에서 김윤후가 몸을 일으키며 칼을 치켜들자, 처인성의 의병들이 달려들어 몽골군을 물리쳤지. 

 

졸지에 사령관을 잃고는 분노로 가득 찬 몽골군이 말을 타고 몰려왔어. 김윤후는 흥분한 몽골군의 허를 찔렀어. 길섶에 숨어 있다가 기습을 한 거야. 몽골군은 허둥대다가 부랴부랴 도망치고 말았어. 살리타가 승려 김윤후에게 죽었다는 소문이 온 나라에 퍼졌어. 몽골군은 당황하기 시작했고, 고려군은 사기가 치솟았지. 그때부터는 싸우는 족족 고려군이 이겼어. 
몽골의 부사령관 테게는 급히 강화를 맺고는 도망치고 말았지. 몽골과의 2차 전쟁은 김윤후의 활약 덕분에 고려의 승리로 끝났어. 

백성들과 함께 충주 산성을 지키다
그 후 한동안 몽골군은 큰 전쟁을 벌이지 않았어. 몽골 제국 내부의 권력 다툼이 치열했거든. 그게 정돈되자 1253년에 몽골군은 다시 고려를 침략했어. 그때까지도 고려 조정은 강화도에서 나오지 않고 버티고 있었지. 몽골군은 화가 머리꼭지까지 올랐지만 그들은 배가 없었고, 배를 다룰 줄도 몰라 강화도로 쳐들어갈 수가 없었어. 그 대신 고려의 남쪽 끝까지 몰려가 온 나라를 불바다로 만들 작정을 했어. 고려 조정은 각 성으로 산성 방호별감이라는 직책을 가진 장수들을 보냈어. 기마대가 주축인 몽골군과 싸우기엔 산성이 유리했거든. 김윤후도 방호별감이 되어 충주로 갔어. 그곳의 군사는 대부분 노비와 천민이었는데, 귀족들과 관리들이 도망치고 없는 성을 꿋꿋이 지켰던 거야. 김윤후는 이들의 대장이 되어 다시 몽골군과 한판 싸움을 치르게 되었지. 몽골군은 충주성에 김윤후가 있다는 말에 흥분하여 드센 공격을 퍼부었어.
두 달 동안 이어진 공격에 고려군은 모두 녹초가 되고 말았어. 양식마저 떨어져 더 버틸 힘이 없었지. 이때 김윤후가 우렁찬 목소리를 토해 냈어.

 

“여기를 보아라!”
김윤후가 종이 뭉치를 들어 펼쳐 보였어. 
“이것은 너희들의 노비 문서이다. 지금 이것을 불태워 신분의 차별을 없앨 것이다!”
김윤후는 손에 든 노비 문서에 화르륵 불을 붙였어. 병사들의 눈에 다시 생기가 돌기 시작했어. 
“몽골군을 무찌른다면 계급과 신분을 따지지 않고 벼슬과 상을 줄 것이다!”
김윤후의 말에 군사들은 우레 같은 함성을 울렸어. 바람 앞의 촛불 같던 충주성에 다시 장작불 같은 기운이 넘실거렸어. 
“얼마든지 오너라. 못된 오랑캐들아!”
“세상에, 이렇게 지독한 놈들은 듣도 보도 못 했다.”
몽골군이 마침내 도망치기 시작했어. 김윤후는 도망치는 몽골군의 뒤를 쳐 더욱 멀리 쫓아 버렸어. 충주 산성에는 승리의 메아리가 오래오래 울려 퍼졌어. 이 공로로 조정에서는 다시 김윤후에게 상장군 벼슬을 내렸어. 상장군이 된 김윤후는 약속대로 노비들을 해방시켜 주고, 공로가 큰 자에게는 관직도 내렸어. 적에게 뺏은 말과 소도 백성들과 군사들에게 나누어 주었지. 
김윤후는 승려이면서 이처럼 뛰어난 장수였어. 두려움을 모르던 몽골군도 김윤후라는 이름 앞에서는 기가 죽었대. 바람처럼 나타난 승려 김윤후, 그가 어느 집안 출신인지는 아무도 몰라. 어디서 태어났는지 어디로 사라졌는지도 알려지지 않았어. 우리 역사에는 이처럼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나라를 지킨 영웅들이 많단다.

/자료 제공= ‘빛난다! 한국사 인물 100-⑥ 고려 후기: 어두운 시대에 등불을 밝히다’(박윤규 글ㆍ이경석 그림ㆍ시공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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