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4년, 영국에서 정치가로 일하던 스위프트는 쫓겨나듯 아일랜드로 건너갔다. 스위프트는 영국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영국인이었지만 나고 자란 곳은 아일랜드였다. 그때 아일랜드는 영국의 식민지였다. 스위프트는 영국 국교회의 성직자이자 정치가로서 영국 정부에 공헌을 많이 했지만, 식민지 출신이라는 꼬리표는 늘 그를 따라다니며 출세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스위프트는 영국에서 사제(신부)가 되고 싶었지만,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하고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 있는 세인트패트릭 대성당의 주임 사제직으로 만족해야 했다. 세상살이에 지친 스위프트는 성당에 틀어박혀 지냈다. 그런데 어느 날 창밖을 바라보다가 깜짝 놀랐다. 거지들이 떼지어 거리에 몰려나와 있었다. 그는 방에서 나와 동료 사제에게 거지가 왜 이리 많은지 물어보았다.
사제가 항의하듯 대답했다.
“아니, 정치를 하셨다는 분이 그것도 모르십니까? 이게 다 영국인들이 자기 배를 불리려고 아일랜드를 약탈했기 때문 아닙니까?”
그동안 스위프트는 아일랜드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조국으로부터 상처받고 돌아온 스위프트에게 아일랜드의 상황은 새삼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스위프트는 영국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면 바로잡아 주는 것이 진정한 애국이라고 생각했다. 스위프트는 성당에서 나와 아일랜드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살펴보기 시작했다. 상황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 농경지의 80퍼센트가 영국인의 손에 넘어갔고 터전을 잃은 농민들은 거지가 되어 거리를 떠돌며 구걸했다.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은 사람들의 수가 아일랜드 전체 인구의 6분의 1에 달했다.
‘아아, 이 가엾은 사람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스위프트는 생각했다. 오래 고민할 것 없었다. 스위프트는 곧바로 서재에 들어가 팸플릿을 쓰기 시작했다. 팸플릿은 광고나 선전 등에 쓰이는 작고 얇은 책자를 말한다. 스위프트가 살던 시대에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사건 또는 정책을 선전하거나 비판할 때 흔히 이 팸플릿을 이용했다. 스위프트는 팸플릿을 통해 아일랜드의 고난이 영국 정부의 무자비한 식민지 정책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이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아일랜드인 스스로도 각성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영국 상품 불매 운동과 아일랜드 상품 소비 운동을 주장했다.
하지만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스위프트를 더욱 화나게 한 것은 아일랜드 사람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삶을 바꾸어 보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인간이 이성적인 동물이라고? 대체 어디가 이성적이란 말이지?’
그러면서도 스위프트는 인간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못해 인간이 인간다워지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했다. 수치심, 바로 그것 같았다.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부끄러워할 줄 안다면 바뀔 수 있는 최소한의 가능성은 있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람들에게 수치심을 느끼게 할 것인가?
궁리 끝에 스위프트는 새 작품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화나게 하는 소설, 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추악한 본성과 부조리 등을 생생하게 폭로하고 조롱하는 풍자 소설을. 작품을 읽으며 분노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양심이 있다면 자신을 돌아보고 부끄러워할 것이고 그러면 뭔가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그 무렵 유럽 각국은 해외 식민지를 건설하기 위해 새 땅 찾기에 열을 올렸다. 이러한 분위기를 타고 문학에서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여행기가 유행했다. 스위프트도 새 작품을 여행기 형식으로 쓰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완성된 작품이 <<걸리버 여행기>>이다. <<걸리버 여행기>>는 영국인 선원 걸리버가 항해하다가 폭풍우를 만나 소인국 릴리퍼트, 대인국 브로브딩내그, 하늘에 떠 있는 섬 라퓨타, 말들의 나라 휴이넘을 여행하고 돌아오는 이야기이다. 이 작품을 통해 스위프트는 아일랜드를 탄압하는 영국의 정치 및 경제 정책을 꼬집고, 추상적이기만 한 철학과 실용적이지 않은 학문, 권력을 남용하는 종교계를 조롱하는 등 인간 세계를 신랄하게 풍자하고 날카롭게 비판했다. 풍자는 마지막 4부에 나오는 휴이넘에서 최고조에 이르렀다. 휴이넘은 ‘히히힝’ 하는 말 울음소리를 본뜬 것으로, 이 나라에 사는 말들도 휴이넘이라고 한다. 도덕과 지성을 가진 말이 다스리는 이 나라는 ‘악’이라는 말이 없을 정도로 도덕적이고 사랑이 넘치는 세계다. 이곳에서 인간은 말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가는 야만적인 존재에 불과하며 탐욕과 거짓으로 가득 차 있다. 스위프트는 뒷날 영국으로 돌아온 걸리버가 가족을 비롯해 모든 인간들과 관계를 끊고 휴이넘을 그리워하며 미쳐 가는 모습을 그려 자신들이 최고라고 자만하는 인간을 통렬하게 비웃었다.
이 작품을 발표하면서 스위프트는 말했다.
“세상 사람들이 이 작품을 받아들일 자격을 갖추고 있기를 바란다.”
이 책을 읽고 부끄러워할 정도의 양심과 수치심은 있기를 바란다는 뜻이었다. <<걸리버 여행기>>는 처음 출판된 1726년에만 3판을 찍었을 만큼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영국 사회의 상류층을 이루던 문학 비평가들은 스위프트를 ‘인간을 미워하고 싫어하는 정신 이상자’라고 비난하며 책이 팔리지 못하게 했지만 넘치는 상상력과 통렬한 풍자, 누구나 읽기 쉬운 글 덕분에 이 책은 식을 줄 모르는 인기를 이어갔다. 특히 환상성과 기발한 상상력은 어린이 독자들까지 사로잡았다. 풍자성 짙은 내용은 덜어 내고 주로 소인국과 대인국에서 벌어지는 사건 위주로 축약한 어린이용 <<걸리버 여행기>>는 신기하고 재미있는 모험 이야기로 오랫동안 큰 사랑을 받았다. 어린이들에게는 환상적인 모험 소설로, 어른들에게는 인간과 사회를 날카롭게 꼬집는 풍자 소설로 두루 사랑받는 <<걸리버 여행기>>는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는 진정한 고전으로 지금도 널리 읽히고 있다.

 


현실을 비판하는 풍자 문학
‘풍자’란 사회나 개인의 모순과 악덕, 어리석음을 꼬집고 비웃기 위한 예술의 한 형식이다. 방식이 어떻든 모두 독자가 현실의 모순을 깨닫고 고쳐 나가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영국의 문학가 드라이든은 풍자의 진정한 목적은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는 것’이라고 했다.
풍자는 당대의 현실을 비판하는 것이기에 다른 시대나 공간에 사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그런데 <<걸리버 여행기>>는 지금까지도 국경과 민족을 초월해 사랑받고 있다. 까닭이 무엇일까? 조너선 스위프트(1667~1745)는 한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걸리버 여행기>>가 영국의 상황만 그린 것이라면 저는 아주 보잘것없는 작가일 것입니다. 똑같은 악행과 어리석음이 곳곳에 퍼져 있습니다. 한 도시, 한 지방, 한 나라, 한 시대만을 위해 글을 쓰는 작가의 작품은 읽을 가치도 번역할 가치도 없습니다.”
스위프트의 말처럼 <<걸리버 여행기>>에는 인간이 사는 곳이라면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악행, 자만, 어리석음이 통렬하게 풍자되어 있다. 그래서 30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는 <<걸리버 여행기>>를 보며 웃고, 때로는 화내고 부끄러워하며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자료 제공= ‘인문학이 뭐래? 5 - 알면 빠져드는 문학’ (햇살과나무꾼 글ㆍ오승민 그림ㆍ한울림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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