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피더슨
(1904~1989)

▲한국에서 출생한 노벨상 수상자 찰스 피더슨.
▲한국에서 출생한 노벨상 수상자 찰스 피더슨.

 

노재미선생님: 오늘도 가볍게 퀴즈부터 하나 내볼까? 한국인 중에서 노벨상을 수상한 사람은?

오디: 선생님, 저희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닌가요? 당연히 김대중 전 대통령이죠.

세이: 맞아요! 2000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잖아요! 

노재미선생님: 근데 노벨위원회 홈페이지에서 수상자를 출생지별로 분류한 표에는 한 명이 더 있어. 1987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미국의 화학자 찰스 피더슨이 바로 그 주인공이야. 

세이: 에이~ 외국 사람이잖아요. 난 또…….

노재미선생님: 찰스 피더슨은 미국인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의 부산에서 태어났거든. 이 사실이 국내에 알려진 후 그는 한때 ‘부산 사나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지. 부산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그에게 한국인의 피는 전혀 섞이지 않았단다. 왜냐하면 노르웨이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거든.

세이: 부모님이 둘 다 외국인인데 어떻게 한국에서 태어난 건가요?

노재미선생님: 피더슨의 아버지는 해양 엔지니어였어. 아버지가 증기선을 타고 동아시아에 왔다가 당시 영국 관할 기관이었던 대한제국 세관에 취업을 했다고 해. 그 후 항해를 포기하고 현재의 북한 북서부에 있는 평안도 운산 광산에서 기계공학자가 된 거고.

세이: 그럼 결혼을 한국에서 한 건가요?

노재미선생님: 맞아. 피더슨의 엄마는 일본에서 태어났는데, 콩과 누에 무역을 하던 가족을 따라 한국으로 온 거였지. 그리고 무역회사를 차린 곳이 운산 광산에서 가까웠던 덕분에 피더슨의 아버지를 만나게 된 거고. 

오디: 근데 부산 사나이로 불렸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노재미선생님: 피더슨 부모님이 러일전쟁을 피해 잠시 부산으로 피난을 왔었거든. 그때 부산에서 피더슨을 낳은 거지. 하지만 네 살 때 다시 운산으로 갔기 때문에 그의 어린 시절 기억의 대부분은 운산 광산에 있지.

오디: 어린 시절을 한국에서 보냈으면 우리나라 말도 할 줄 알겠네요?

노재미선생님: 당시 운산 광산은 미국의 금광 시설이어서 미국인들에 의해 관리되고 있었다고 해. 또 그곳엔 외국인 학교가 있어서 영어를 배워 사용했고. 피더슨에 의하면 그때만 해도 호랑이와 늑대가 돌아다닐 만큼 운산은 외진 곳이었다고 해.

오디: 그럼 우리나라에서는 그냥 태어나기만 한 거고, 어떤 영향도 받지 않은 건가요?


노재미선생님: 하하. 꼭 그렇지는 않아. 운산은 그에게 화학과의 첫 인연을 맺어준 곳이기도 하거든. 광산에서는 시안을 이용해 금을 추출했는데, 훗날 피더슨은 시안에 금이 녹는 모습을 본 것이 자신과 화학의 첫 만남이었다고 회고했어.

오디: 휴, 다행이다. 그럼 피더슨은 언제까지 한국에서 살았나요?

노재미선생님: 학교에 보낼 나이가 되자 그의 부모님은 피더슨을 일본 나가사키에 있는 수녀원 학교에 보냈어. 그리고 2년 후인 10살 때 피터슨은 다시 어머니를 따라 요코하마에 있는 세인트요셉 칼리지에 들어가 중고교 과정을 마쳤지. 

세이: 한국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국적은 왜 미국인이죠?

노재미선생님: 아버지의 권유로 대학은 미국에서 공부했거든. 1922년 미국으로 건너가 데이튼 대학교에 입학했지. 그곳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피더슨은 메사추세츠 공과대학에서 유기화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어. 당시 그를 가르쳤던 지도 교수는 박사 과정을 권유했지만, 부모에게서 일찍 독립한 피더슨은 공부 대신 회사를 선택했다고 해. 1927년 ‘듀폰’이라는 세계적인 종합 화학 회사에 입사한 거야. 그렇기 때문에 피더슨은 박사 학위를 받지 않고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수상한 몇 안 되는 인물 중 한 명으로 기록되고 있지.

 

 

세이: 그런데 선생님, 피더슨이 출신지로는 한국의 부산으로 되어 있다고 하셨잖아요. 근데 노벨위원회는 왜 누리집에 수상자를 출신지별로 분류해놓은 건가요?

노재미선생님: 노벨상위원회에서는 노벨상 수상자들을 출생지뿐만 아니라 수상 당시 국적과 소속기관으로도 분류해놓고 있어. 그 이유는 국가마다 국적을 결정하는 원칙이 제각기 달라 국적 표기가 상당히 어렵기 때문이지. 

세이: 우리가 아는 사람 중에도 국적이 바뀐 경우가 있나요?

노재미선생님: 물론이지. 아인슈타인의 경우에도 수상 당시에는 독일 국적을 지니고 있었지만,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국적을 가졌던 적도 있어. 최종적으로는 미국 시민권을 획득했지. 

오디: 한국인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쩐지 뿌듯하네요. 

노재미선생님: 피더슨은 듀폰에 입사한 지 42년 만인 1969년에 은퇴했는데, 그곳에서 그가 발표한 논문만도 25편, 획득한 특허만 해도 65개나 된다고 해. 그래서 노벨상 수상 당시 그는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스웨덴 스톡홀름에 직접 가서 노벨상을 받은 뒤 “상업성이 없는 연구를 계속 지원해준 듀폰사에 감사합니다”라는 내용의 수상 소감을 남겼다고 해. 그러고는 2년 후인 1989년 10월 26일 조용히 세상과 이별했지.

세이: 끝까지 자기를 믿어주고 후원해주는 회사가 있다는 것도 큰 힘이 되었겠어요.

노재미선생님: 맞아. 과학자에게 그런 든든한 배경이나 후원은 정말 큰 힘이 되거든. 그런 면에서 피더슨은 세이 말대로 행복한 과학자였던 것 같구나.

/자료 제공:‘20가지 재미있는 노벨상 이야기’(이성규 지음ㆍ두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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