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가지 재미있는 노벨상 이야기

 


가브리엘 리프만
(1845~1921)
 

▲ 세계 최초로 컬러사진 촬영법을 개발한 가브리엘 리프만.
▲ 세계 최초로 컬러사진 촬영법을 개발한 가브리엘 리프만.

 

 

노재미 선생님: 오늘의 퀴~즈! 흑백 사진을 세계 최초로 발명한 사람은 어느 나라 사람일까?

오디: 미국이요! 미국이 노벨상을 가장 많이 받은 나라니까, 확률로 계산해 저는 미국으로 찍겠어요. 히히.
노재미 선생님: 안타깝게도 정답은 프랑스란다. 조세프 니에프스라는 프랑스 사람이 1826년경에 8시간에 걸쳐 자신의 연구실 창문으로 보이는 자연 풍경을 찍었지. 그리고 역시 프랑스 사람인 루이 자크망데 다게르는 1839년에 20분에 걸쳐 거리에서 구두를 닦고 있는 남자를 찍어 사람을 찍은 세계 최초의 사진으로 인정받게 됐단다. 그럼 컬러사진은 어느 나라 사람이 발명했을까?

오디: 이번에도 프랑스 아닌가요?

▲최초의 흑백사진을 발명한 조세프 니에프스.
▲최초의 흑백사진을 발명한 조세프 니에프스.

 

노재미 선생님: 정답이야! 흑백 사진이 나온 후부터 과학자들이 집중한 건 사진에 색깔을 입힐 수 있는 방법, 즉 컬러사진의 개발이었지. 이에 대한 최초의 해답을 제시한 사람이 프랑스의 물리학자 에드몽 베크렐이었어. 하지만 베크렐은 이론을 만들긴 했지만 색깔이 구현되는 원리는 찾아내지 못했지. 그러다가 가브리엘 리프만이 각기 다른 파장의 천연 색채를 이용한 혁명적 컬러사진 촬영법을 개발했어. 그 후 다양한 컬러 이미지 제작에 성공한 그는 1894년과 1906년에 간섭법을 이용한 컬러사진 이론을 각각 논문으로 발표했지. 이를 ‘리프만법’이라고 하는데, 사진판이 그대로 있는 한 변하지 않고 선명할뿐더러 조작이 간단해 큰 인기를 끌었어.

세이: 모두가 실패한 기술을 끈질기게 연구해서 성공시켰다니 대단한데요?

노재미 선생님: 그렇지?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이처럼 간섭 현상을 이용해 컬러사진을 만든 공로를 인정해 1908년 노벨 물리학상을 가브리엘 리프만에게 수여했단다.

세이: 리프만의 또 다른 업적은 없나요? 

노재미 선생님: 그는 청년 시절에 박사 학위 논문으로 제출한 연구 결과가 현대에 와서 중요한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고 해. 1875년 소르본 대학교에 제출한 전기모세관 현상에 관한 논문이 바로 그거야. 

오디: 전기모세관 현상이 뭔가요? 

노재미 선생님: 너희들 혹시 물이 반쯤 차 있는 컵에 들어 있는 빨대를 자세히 살펴본 적이 있니? 일반적으로는 컵에 있는 물의 높이와 빨대 속의 물의 높이가 같아야 하는데, 잘 살펴보면 빨대 속의 물의 높이가 조금 더 높은 걸 알 수 있어. 그런데 빨대 대신 금속관을 넣고 전기를 통하게 하면 표면장력이 더욱 세져서 물의 높이가 더 높아지게 되지. 리프만이 처음 이 현상을 발견했을 당시만 해도 이 기술은 빛을 보지 못했어. 전기모세관 현상은 1볼트 이하의 낮은 전압에서만 일어나기 때문이지. 그런데 1990년 이후 높은 전압으로도 전기모세관 현상을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이 발견되면서 이 기술은 현재 휴대폰의 액체 렌즈를 비롯해서 전자종이 분야, 질병 진단 칩 등에서 중요한 기술로 주목받고 있단다. 

 

 

오디: 어떻게 그런 것들을 발명했대요? 이런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뭔가 좀 달랐을 거 같아요.

노재미 선생님: 리프만이 특별한 삶을 살았던 건 아니야. 리프만은 1845년 8월 16일 룩셈부르크에서 태어났어. 리프만의 아버지는 가죽 제품을 만드는 공장을 운영하는 프랑스인이었지. 리프만이 물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 덕분이었다고 해. 당시 그 선생님은 두 개의 공으로 지구의 공전 및 자전을 설명해 왜 낮과 밤이 생기는지를 설명하고, 천과 모피, 고무를 마찰시켜 전기를 발생시키는 실험 등으로 재미있는 수법을 해서 리프만의 상상력을 자극했다고 해. 


오디: 저도 쌤이 축구공으로 지구의 공전과 자전을 설명해주면 잘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상상력도 마구 생길 거 같고. 크크.

노재미 선생님: 하하. 그래? 선생님도 재밌게 수업하려고 노력해볼게. 어쨌든 리프만은 이후 과학 연구에 푹 빠져 거의 모든 시간을 실험실과 독서실에서 보냈다고 해. 그리고 13세 때 파리로 이사한 뒤 중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고, 이후 독일로 유학을 가기도 했지. 이처럼 유명한 과학자인 리프만은 노벨상을 흠집 낸 발명가로도 유명하지.

오디: 아니, 왜요? 컬러사진을 최초로 발명했는데 왜 노벨상에 흠집을 냈다고 하는 거예요?

노재미 선생님: 사실 그가 발명한 컬러사진 기법은 상업화되기에는 너무 많은 단점을 지니고 있었거든.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에 이용되고 있는 컬러사진은 리프만 방식을 따르지 않고 있어. 즉, 노벨상을 받은 발명품이 실제 제품으로 만들어지는 데는 실패한 셈이지. 이로 인해 노벨상위원회는 한동안 발명품에 대한 수상을 꺼리게 되었어.

세이: 실용화에 실패했다고 해서 노벨상에 흠집을 냈다고 하는 건 너무 가혹한 거 같아요.

오디: 세이 말이 맞아요. 뭐 인류에 피해를 입힌 것도 아니고, 최초의 발명은 발명이잖아요!

노재미 선생님: ‘최초의 발견이지만 가장 효과적인 것은 아니다’라는 의미에서 보면 노벨상의 가치에 조금 흠집을 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리프만 덕분에 노벨상 수상자 선정에 좀 더 신중을 기하게 되었으니 노벨상 발전에 도움도 되었다고 볼 수 있겠지?

/자료 제공:‘20가지 재미있는 노벨상 이야기’(이성규 지음ㆍ두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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