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카와 히데키
(1907~1981)

 

▲순수하게 일본에서만 공부해 노벨상을 수상한 유카와히데키.

 

노재미 선생님: 너희 혹시, 아시아인 최초로 노벨상 받은 사람이 누군지 아니? 정답은 인도의 라빈드라나드 타고르란다. 

세이: 맞다. 우리나라를 ‘동방의 등불’이라고 표현한 시인 말이죠?

노재미 선생님: 응. 타고르는 ‘기탄잘리’라는 시집으로 1913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지. 그럼 과학 분야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노벨상을 받은 사람은 누굴까?

오디: 문제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은 이 느낌적인 느낌은 뭘까요! 흐흐.

◀아시아  최초로  노벨 물리학상을수상한 찬드라세카라 라만.
◀아시아  최초로  노벨 물리학상을수상한 찬드라세카라 라만.

 

노재미 선생님: 인도의 물리학자 찬드라세카라 라만이 바로 그 주인공이야. 라만이 1922년에 발표한 논문 <빛의 분자에 의한 회절>이 ‘라만 효과’의 발견으로 이어져 1930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지.

세이: 음…… 그런데 노벨상이 시작된 건 1901년이잖아요. 그럼 아시아에서는 노벨상이 생기고 거의 30년이 지나서야 처음 과학 분야 노벨상을 받은 거네요? 

노재미 선생님: 그런 셈이지. 처음엔 노벨상 수상자들이 대부분 백인이었어. 특히 과학 분야의 경우 더 심했지. 라만의 노벨상 수상도 아시아인이 순수하게 이룬 과학적 업적으로 보기엔 좀 애매하단다. 당시 인도의 학문은 영국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거든.

세이: 그렇다면 인종 차별의 벽을 허물고 순수하게 아시아인 최초로 과학 분야의 상을 받은 사람은 누군가요?

노재미 선생님: 일본의 물리학자 유카와 히데키야. 그는 원자핵 속의 새로운 입자인 ‘중간자’의 존재를 예측하는 이론을 세운 업적으로 1949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어. 특히 유카와는 외국 유학 경험이 없는 순수한 일본 국내파라는 점에서 더욱 세상을 놀라게 했지. 그가 처음으로 외국에 나간 건 1939년인데, 그때는 이미 중간자 이론으로 유명해진 후였어.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그에게 이 이론에 대한 결정적인 영감을 준 게 바로 동양의 인문학이라는 사실이야. 

 

오디: 동양 인문학이 중간자 이론에 영향을 주었다고요?

노재미 선생님: 유카와는 1907년 1월 23일 도쿄에서 태어났어. 그의 아버지는 교토제국대학교 지질학 교수인 오가와 다쿠지인데, 조선이 1402년에 제작한 세계지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일본 학계에 처음 알린 장본인이기도 하지. 이처럼 집안이었기 때문에 유카와는 어릴 때부터 ‘장자’와 ‘노자’등 동양 고전을 외우다시피 했어.

세이: 하지만 동양 인문학이랑 중간자 이론은 전혀 다른 세상 이야기 같아요. 어떻게 영감을 주었을지 여전히 상상이 안 가요.

노재미 선생님: 원자핵 내부에는 양전하를 띠며 서로 강하게 밀어내는 힘이 존재하는데, 당시 과학자들에게는 원자핵이 이처럼 강한 반발력을 이겨내면서 어떻게 서로 결합되어 있는지가 미스터리였어. 그것을 설명한 것이 바로 1934년에 발표한 유카와의 중간자 이론이었지. 

세이: 그 ‘중간자’라는 것에 힌트를 준 게 바로 동양의 인문학이었다는 말이죠?

노재미 선생님: 맞아. 당나라 이백의 시와 ‘장자’의 <응제편>에 나오는 이야기가 중간자를 예측하는 데 영감을 주었다고 해. 빛과 그늘, 즉 세월은 천지라는 만물의 숙소를 스쳐가는 손님이라고 읊은 이백의 시에서 그는 시공과 소립자의 관계가 서로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지. 하지만 유카와가 과학자로서의 꿈을 키울 수 있었던 건 일본을 방문한 외국의 과학 거장들 덕분이기도 해. 그중에는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도 포함되어 있었지. 1922년 초 일본을 방문했는데, 그가 1921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결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건 일본으로 향하던 배 안에서였어. 아인슈타인은 도쿄와 나고야 등을 순회하며 강연을 이어갔는데, 그 관중 속에 중학생인 유카와 히데키도 포함되어 있었던 거지.

세이: 그런데 선생님, 중간자 이론을 발표한 건 1934년인데 노벨상을 받은 건 1949년이라고 했잖아요. 노벨상을 왜 그렇게 늦게 줬나요?

노재미 선생님: 왜냐하면 과학자들은 유카와 히데키의 이 같은 기발한 발상을 처음엔 믿지 않았거든. 그런데 3년 후인 1937년 중간자로 해석할 수 있는 입자가 실제로 관측됐지. 이후 유럽의 물리학계에서는 유카와를 보는 시선이 변해 많은 사람들이 유카와를 노벨 물리학상 후보로 추천하기 시작했단다. 하지만 노벨위원회는 유카와를 번번이 탈락시켰어. 실제로 관측된 중간자와 유카와가 예측한 중간자 사이엔 일치하지 않는 성질도 존재했기 때문이야.

오디: 그건 유카와의 연구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의미네요?

노재미 선생님: 응. 하지만 그 문제는 일본의 물리학자 그룹이 해결했어. 일본의 대표적인 기초과학연구소인 ‘리켄(이화학연구소)’이 주축이 된 젊은 과학자들이 실제로 관측된 중간자의 경우 중간자가 붕괴되어 생긴 탓에 유카와가 이론적으로 예측한 중간자의 성질과 조금 차이가 있다고 설명한 거야. 이후 다른 종류의 중간자가 발견되고, 가속기를 통해 인공적인 중간자가 탄생하는 등의 성과가 이어지자 노벨위원회는 결국 1949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유카와 히데키를 선정했단다. 그의 수상은 이론 분야의 업적을 잘 인정하지 않는 노벨위원회의 수상 원칙을 최초로 깬 노벨상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어.

▲일본의 대표적인 기초 과학연구소 인리켄.
▲일본의 대표적인 기초 과학연구소 인리켄.

 

세이: 우리나라 사람이 받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백의 시와 장자의 우화에서 영감을 받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어쩐지 뿌듯하기도 해요.

오디: 선생님, 저 결심했어요. 저는 당장 오늘부터 인문학 책을 찾아서 읽겠어요.


기탄잘리: 인도의 시인 타고르의 시집이에요. ‘기탄잘리’는 신에게 바치는 노래라는 뜻인데, 인간과 신과의 관계를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감정을 빌려서 읊고 있어요. 103편의 연작시로 구성되어 있어요.

아시아 최초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찬드라세카라 라만.
순수하게 일본에서만 공부해 노벨상을 수상한 유카와 히데키.

이백: 중국 당나라 시인이에요. 두보라는 시인과 함께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시인이죠. ‘달아 달아 밝은 달아’라는 전래동요에 “이태백이 놀던 달아”라는 표현이 있는데, 그 이태백이 
바로 이백을 말해요. 

소립자: 물질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이 되는 물질 요소로서 양성자, 중성자, 전자, 중간자 등을 소립자라고 해요.

일본의 대표적인 기초과학 연구소인 리켄.


/자료 제공:‘20가지 재미있는 노벨상 이야기’(이성규 지음ㆍ두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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