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으로 세상을 물들이다

광기로 변한 튤립 열풍
봄이 되면 곳곳에서 꽃 축제가 열려. 그런데 아름다운 꽃이 투기의 대상이었던 적이 있었어. 풍차의 나라로 유명한 네덜란드에서 1630년대에 일어났던 일이야. 튤립은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꽃으로도 유명해. 지금은 튤립이 흔한 꽃이지만 당시에는 귀족 상류층을 중심으로 투기 현상이 벌어질 정도로 인기 있는 꽃이었어. 네덜란드에서 일어났던 튤립 열풍은 현대판 주식 열풍과 같았지. 상류층들은 정원에 튤립을 가꾸면서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려고 했어.

▲네덜란드의 튤립농장
▲네덜란드의 튤립농장

 

튤립 가격이 급격히 오르자 중산층에게까지 튤립 투자 열풍이 퍼져 나갔어. 사람들은 튤립의 알뿌리 하나를 얻기 위해 집과 농장을 팔기도 했어. 알뿌리 하나 가격이 보통 집 한 채 가격을 넘어갔어. 1630년대 중반에는 뿌리 하나가 우리 돈으로 1억 6000만 원까지 올라갔지.

붉은색과 흰색이 섞인 튤립인 ‘셈페르 아우구스투스’는 알뿌리 하나가 12에이커(약 48,562제곱킬로미터) 정도의 비싼 땅과 맞교환되었을 정도였어. 
 

흑사병이 튤립을 시들게 하다 
튤립 투자의 광풍이 몰아칠 무렵, 네덜란드에 흑사병이 돌기 시작했어. 튤립의 투자 광풍은 네덜란드에 유행한 흑사병과도 관련이 있어. 전염병이 돌아 민심이 흉흉해지자 미래를 장담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의 불안한 심리가 단번에 큰돈을 벌기 위한 투자 광풍으로 이어진 거야. 하지만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책정된 상품 가격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어. 가격이 오를 만큼 오른 튤립을 되팔려고 하자, 너무 비싼 가격 때문에 튤립을 살 사람이 없었던 거야. 그런 이유로 두 달 만에 국민의 절반이 빈곤층으로 떨어졌어. 사람들의 심리는 참 이상해. 남들이 사는 물건을 나도 가지고 있어야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튤립도 마찬가지였어. 튤립은 희소성이 있는 상품도 아니었어. 그저 남들이 가지고 있으니 나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소유에 대한 경쟁이었지. 실제 가치가 아닌 가상 가치를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이후 튤립 파동은 ‘거품(Bubble) 경제’를 의미하는 비유적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어.

남해 거품 사건과 미시시피 계획
네덜란드의 튤립 파동 같은 인간의 광기가 드러난 사건이 또 있었어. 근대 유럽의 3대 거품 경제로 불리는 영국의 남해 거품 사건과 프랑스의 미시시피 계획이야.
영국의 남해 거품 사건은 영국이 발행한 국채에서 시작돼. 토리당 정부의 재무상인 옥스퍼드 백작은 영국 정부의 재정 부담을 줄여 주려는 목적으로 1711년에 남해 회사를 설립해 국채 천만 파운드를 인수했어. 하지만 조건을 내걸었지. 에스파냐가 소유한 남아메리카 및 태평양 제도에 대한 무역 독점권을 달라는 거였어. 1718년, 남해 회사는 복권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금융 회사로 탈바꿈을 했어. 1720년에는 회사의 가치를 더 높이려 국채 전액을 인수하겠다는 사업 내용을 발표해. 100파운드였던 회사 주식은 6개월 만에 1050파운드로 뛰었어. 국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주식 투자에 열을 올렸지. 투자 열풍을 잠재울 필요가 있었던 영국 정부는 6월 24일, ‘거품 회사 규제법’을 발표했어. 그리고 남해 거품 사건을 조사하면서 세계 최초로 회계 감사 보고서가 제출되었지. 이 사건은 기업에 대한 회계 감사 제도와 공인 회계사 제도가 생겨나게 하는 계기가 되었어. 

영국 화가 윌리엄 호가스가 그린 남해 거품 사건.
영국 화가 윌리엄 호가스가 그린 남해 거품 사건.

 

18세기 초반, 프랑스는 북아메리카 미시시피강 유역을 개발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어. ‘미시시피 계획’이라 불리는 이 사업은 스코틀랜드 사업가 존 로가 프랑스 정부로부터 25년간의 무역 독점권을 획득하면서 시작되었지. 존 로는 루이지애나 지역의 경제적 가치를 과장해 투자자를 계속 끌어모았어. 1719년, 영국의 남해 거품 사건과 마찬가지로 인도 회사 주식에 대한 광풍이 일어났지. 주가는 500리브르에서 1만 5천 리브르까지 치솟았어. 실제 가치와 주식 가격을 맞추기 위해서는 주식을 새로 발행할 수밖에 없었지. 결국 1720년 여름, 회사에 대한 신용이 급격히 하락하면서 1721년에는 다시 500리브르까지 하락했어. 존 로는 사기꾼이라는 별명을 얻었지. 하지만 유가 증권이 중요시되는 오늘날에는 존 로를 성공적인 금융 리더로 평가하기도 해. 프랑스에서 세워진 미시시피 계획은 개발을 미끼 삼아 일어난 거품 경제의 대표적인 사례야. 오늘날 부동산 투자와 같은 이치라 생각하면 돼. 

 

 

/‘상품 속 세계사’ (심중수 글ㆍ이현정 그림ㆍ봄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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