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꿀 수 있는 곳으로 또 전당포가 있었다고 했지? 전당포는 시계나 보석 등의 물건을 담보로 잡아 돈을 빌려 주고 이자를 얻는 곳이란다. 전당포 업이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거래 방식이라는구나. 2, 3천 년 전에 이미 중국에서 시작되었거든. 우리나라에는 일본의 고리대금업자들이 1876년 개항과 함께 들어와 전당포를 열었지. 처음에는 옷ㆍ비녀 등 여성들의 물건이 주로 담보로 잡혔고, 나중에는 토지ㆍ건물까지 거래가 이루어졌어. 기한은 물품이 두 달, 귀금속이 석 달, 토지ㆍ건물이 반년이고, 이자는 빌려 주는 돈이 100원 이상은
시장은 매우 다양한 역할을 해요. 무엇보다 우리 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품을 쉽게 구할 수 있도록 해 줘요. 바로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해 주는 거예요. 시장은 물건의 가격을 결정하기도 해요. 무슨 얘기인지 이해가 잘 안 되지요? 예를 하나 들어 볼게요. 가위를 만들어 파는 사람이 있어요. 생산한 가위를 얼마에 팔면 좋을지 잘 모를 거예요. 때마침 시장에는 좋은 가위가 별로 없었어요. 이런 상황일 때 정성스레 만든 가위를 시장에 팔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질 좋은 가위를 찾는 사람이 모여들 테고 가위는 높은 가격에 불티나게 팔릴 거
대구가 더운 이유우리나라 동남쪽에 위치한 대구는 아주 더운 여름 날씨로 유명하지요. ‘대프리카’라는 신조어는 ‘아프리카만큼 더운 대구’ 또는 ‘아프리카보다 더운 대구’라는 뜻에서 사람들이 만들어 낸 말입니다. 대구는 바다의 영향을 적게 받는 내륙 분지예요. 남부와 북부 산지가 병풍처럼 분지를 둘러싸고, 금호강이 흐르는 동서부는 남북부에 비해 고도가 낮고 평평해요. 분지여서 여름에 바다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받을 수 없고, 바람이 산을 넘어 분지로 내려올 때 기온이 올라 여름에 매우 더워요.대프리카를 해결하려면?대구시를 가로질러
가우디는 어렸을 때 몸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름 별장에서 긴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 덕분에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해 알 수 있었습니다.그는 건축가가 되려는 꿈을 갖고 있었어요. 그래서 바르셀로나로 이사를 간 뒤, 건축 전문학교에 입학해 건축을 공부했습니다. 그는 일반 학생들과 달랐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상상하지도 못했던 건축물을 설계했기 때문이지요. 가우디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이 좋아했지만, 싫어하는 사람은 그의 설계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자네는 왜 기존의 방식대로 건물을 설계하지 않나?”교수의 물음에 가우디는
현보야, 우리가 만약 3년 정도 꼼짝도 못 하고 어둠 속에 갇혀 있게 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1964년 일본 도쿄에서 있었던 일이야. 이해에 일본은 올림픽을 앞두고 경기장 건설에 마지막 힘을 쏟아붓고 있었어. 좁은 경기장을 넓히려고 둘레에 있는 집들을 헐게 되었어. 그중 한 집을 허는데 벽에 붙어 있는 널빤지를 뜯어 내자 도마뱀 한 마리가 나타났어.“이건 도마뱀 아니야? 이런, 꼬리에 못이 박혀 움직이지 못하네!”도마뱀은 꼬리에 박힌 못 때문에 아무리 몸부림쳐도 못을 중심으로 동그라미만 그릴 뿐 달아나지 못한 거야. “캄캄한 벽
창희가 물었습니다.“옛날에도 은행이 있었나요? ”돈귀신이 대답했습니다.“옛날에는 돈을 빌려 주는 곳으로 고리대금자와 전당포가 있었고, 대출과 예금을 같이하는 곳으로 객주가 있었단다. 그럼 고리대금이 뭔지 먼저 알아볼까? 고리대금은 비싼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 주는 것을 말해. 고려 태조 때 세운 의창, 성종 때 세운 상평창 같은 기관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려고 쌀과 베를 빌려 주고 이자를 거두어들였어. 그 이자가 쌀 15말에 5말, 베 15필에 5필로 33.3퍼센트나 되었어. 하지만 실제로는 더 높았다고 해. 고려 때는 ‘장생
백범 김구, 이순신 장군, 조선의 5대 궁궐…. 교과서에 나오는 역사 인물과 유적지입니다. 이 코너는 어린이들이 꼭 알아야 할 우리 문화유산을 지하철을 통해 만날 수 있게 해 줍니다. 한마디로 ‘지하철로 떠나는 초등 체험 학습’이지요. 역사 유적지를 향해 지하철로 함께 떠나볼까요?가는 방법: 6호선 경의중앙선 효창공원앞역효창공원앞역 1번 출구에서 나와서 오른쪽 효창 운동장 방향으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효창동 주민센터가 보여요. 이 센터를 앞으로 바라봤을 때 왼쪽 길로 올라오면 백범 김구 기념관 출입구가 나와요.효창 공원에는 나라를
오랜 역사를 지낸 전통 시장일수록 규모가 크고 볼거리가 많아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놀라운 이야깃거리도 넘치지요. 이 코너에서는 우리나라와 세계의 전통 시장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시장이 탄생하게 된 배경과 역할을 먼저 살펴보고 전통 시장 이야기를 다룰 거예요. 이제 그 나라의 역사, 문화, 경제가 살아 숨 쉬는 세계의 시장 속으로 떠나볼까요?시장의 탄생 ①시장(市場)은 사람들이 한데 모여 곡식, 과일, 생활용품 등 여러 가지 물건을 사고파는 고정된 장소를 말해요. 우리나라에 시장이 처음 생겨난 건 삼국 시대라고 전해져요. 삼국 시대
현보야, 만약 어려운 문제에 부닥치면 어떠한 자세가 필요할까?한 대학교에서 동물의 심리를 실험하기 위하여 토끼 두 마리의 다리에 똑같이 석고붕대를 감았어. 두 토끼는 다리 하나를 제대로 쓸 수가 없게 되었어.그러자 한 마리는 답답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발버둥 쳤어. 먹이를 주어도 먹지 않고 붕대만 물어뜯었어.“다리가 무거워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는데 먹이만 먹으면 뭐 해.”아마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 이 토끼는 그만 힘이 다 빠졌고, 이빨도 모두 닳아 버렸어. 먹이를 주어도 먹을 수조차 없게 되었어.그런데
1917년, 미국 출신의 곡예비행사 ‘아트 스미스’가 한양의 하늘에서 비행기를 몰면서 쇼를 펼쳤습니다. 비행기를 구경한 사람들은 깜짝 놀랐어요. 이들 중에는 권기옥도 있었습니다. 그녀는 비행기가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날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비행사가 되는 것을 꿈꾸게 되었지요. 당시에는 일제가 우리나라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권기옥은 3ㆍ1운동을 할 때 친구들과 함께 거리로 나가서 독립 만세를 외치다가 일본군에 끌려가 감금당했습니다. 그녀는 독립에 대한 열망이 컸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유치장에서
호랑이는 우리의 친구할머니한테 옛날 이야기를 해 달라고 하면 호랑이 얘기를 많이 해 주실 거예요. 우리나라는 호랑이에 얽힌 전설과 이야기가 많아요. 호랑이는 우리 생활, 문화와 가깝기 때문에 옛이야기에 자주 등장한답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된다.”라는 속담이나 과 같은 전래 동화를 봐도 호랑이가 자주 등장하죠. 우리 조상들은 호랑이를 좋아하며 신성시했고 호랑이의 용맹함을 높이 샀어요. 우리 민족이 호랑이의 기를 이어받았다고 여겼습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 2018년 평창
현보야, 아직은 날씨가 무척 춥구나. 이 겨울 산속에 있는 새들은 어떻게 추위를 이길까?아버지가 어렸을 때는 겨울이면 초가지붕 밑으로 파고드는 참새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단다. 그런데 요즘은 초가집이 없어서 그런지 겨울이 되어도 참새들이 잘 보이지 않더라. 눈이 많다 하여 대설산(大雪山)으로도 불리는 히말라야 산에 가면 참새보다 더 작은 야맹조(夜盲鳥)라는 새가 있다고 해. 이 새는 추위를 이기기 위해 몸집을 키우려고 해도 먹을 것을 구할 수가 없어서 늘 작은 몸집으로 살아간대. 또 둥지도 없대. 그러다 보니 추워서 늘 오들오들 떤다
“민족 지도자들이 3월 1일에 독립 만세 운동을 한대!”친구가 알려 준 정보에 유관순은 흥분했습니다.“그러면 우리도 나서자. 일본에게 빼앗긴 우리의 자유를 되찾아야지!”유관순은 3월 1일만 손꼽아 기다렸어요.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민족 지도자들이 탑골 공원에서 독립 선언서를 발표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독립 만세를 외치며 서울 시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지요. 당시 유관순이 다니고 있던 이화 학당 교장 선생님은 학생들이 다칠 것이 두려워 만세 운동을 못 나가게 말렸습니다. 하지만 나라가 없으면 학교도 의미 없다는 생각을 한
“오늘은 돈을 가치있게 쓴 경주 최 부잣집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까? ”“예, 어서 해 주세요.”조선 시대에 가장 널리 알려진 부자 집안은 경주 최 부잣집이야. 신라 말의 이름난 문장가인 최치원의 후손으로, 17대 손인 최진립(1568-1636)과 그 아들 최동량(1598-1664) 때부터 큰 재산을 모아 28대 손인 최준(1884-1970)에 이르기까지 12대 300여 년 동안 조선 최고의 부자로 명성을 누렸지.최진립의 아들인 최동량에 이르러 만석꾼으로 올라섰지. 최동량이 발 벗고 나선 일은 개울둑을 막고 논밭을 개간하는 것이었어
농촌의 자연환경을 이용한 생산 활동농촌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자연환경을 이용해 여러 가지 생산 활동을 해요. 하천에서 물을 끌어와 논에서 벼농사를 짓고, 밭에서는 여러 가지 채소를 재배해요. 이러한 농촌의 생산 활동은 우리가 농촌에서 볼 수 있는 낮은 산이나 넓은 들판과 관련이 깊답니다. 바닷가에서는 물의 염분이 높기 때문에 벼농사를 하기가 어렵고, 높은 산은 험한 지형 때문에 농기구를 이용하기 쉽지 않거든요. 하지만 농촌에서 벼농사와 채소 재배만 하는 것은 아니에요. 가축을 기르거나, 농기구를 팔거나 고치고, 농업 기술을 연구해
현보야, 세상 모든 병을 고칠 수 있는 약이 있다면 어디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옛날 어느 곳에 부자가 있었어. 부잣집에는 없는 것이 없었어. 먹을 것이 곳간에 넘쳐나고 금은보화도 방마다 가득했어. 그런데 아들이 없었어. 그것이 늘 걱정이었어.“돈이 많으면 뭐 하나? 아들이 없는데….” 그러던 어느 해였지. 하늘이 도왔는지 부인이 아들을 낳았어. 부자는 아들에게 돈을 펑펑 썼어. 좋은 옷에 좋은 음식을 먹이며 꼼짝도 못 하게 했어.“혹시 다칠지 모르니 부인이 아이를 따라가구려. 내일은 내가 따라가리다.”부자는 아들을 마당에도 내보내
김정호는 어렸을 때 산에 오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는 주변 마을 모습을 둘러보면서 여러 생각을 했습니다.‘서울로 가려면 어느 길을 따라가야 하지? 저 산 너머에는 어떤 모습이 펼쳐져 있을까?’ 그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했습니다. 이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서는 지리와 관련된 책을 공부하는 수밖에 없었지요. 그래서 그는 지역 정보에 대한 내용이 체계적으로 담긴 ‘지리지’를 많이 읽었습니다. 김정호는 혼자 지리지를 공부하는 것에서 끝내지 않았어요. 최한기, 신헌 같은 학자들과 친구를 맺고 지리에 대해 끊임없이 논의를 했습니다.“
충청도 충주 지방에 살았던 조륵은 부자이면서 인색하기로 소문이 났어. 신발이 닳는다고 벗어 들고 다니는가 하면, 걸을 때 팔을 휘저으면 옷이 닳는다고 뒷짐을 지고 다닐 정도였지.조륵의 집에서는 천장에 굴비를 매달아 놓고 밥을 먹었어. 굴비 한 번 쳐다보고 밥 한 숟갈 떠먹었지. 조륵은 굴비를 두 번 이상 쳐다보면 “너무 짜게 먹지 마라.” 하고 꾸짖곤 했어. 그런데 어느 날 큰아들이 굴비를 두 번 쳐다보는 거야. 그러자 작은아들이 얼른 아버지에게 일러바쳤지. 이때 조륵이 인자한 목소리로 말했어. “오늘은 네 형 생일이니 봐주자.”하
땅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요?지구는 지각, 맨틀, 외핵, 내핵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삶은 달걀에 빗대자면 달걀 껍데기가 지각이에요. 한자로 각(殼)은 껍데기라는 뜻이죠. 지구의 지각 두께는 약 5~35km입니다. 지각 아래에 있는 맨틀 온도는 무려 약 1000℃에서 5,000℃로 아주 뜨거워요. 맨틀은 가만히 있지 않고 이리저리 움직입니다. 그러면 맨틀 위에 있던 지각들도 덩달아 움직이죠. 이렇듯 맨틀이 움직이면서 바닷속 암석이 들려 올라와 땅이 되기도 해요. 그렇게 땅이 올라와 육지가 만들어지는데, 그 가운데에는 히말라야 산맥과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인정하고 반성한 주시경주시경의 원래 이름은 주상호였습니다. 주상호는 어렸을 때 서당에서 한문을 배웠어요. 그는 한문과 우리말 사이에 순서가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국어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주상호는 어렸을 때 여느 아이들처럼 친구들과 자주 어울려 놀았어요. 하루는 한 친구가 말했습니다.“얘들아! 술래잡기랑 숨바꼭질을 계속하니까 질린다. 이제 다른 거 하고 놀자.”상호와 친구들은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근처 집 마당에 옥수수 줄기 껍질을 벗겨 봉 모양으로 만든 수수깡이 보였어요. “야! 저 수수깡 가지고 집을